1권 창조와 족장 · 욥기 3-37장
제9장 재 위의 논쟁
우스 땅의 잿더미. 하루아침에 재산과 열 자녀를 잃고 온몸에 종기가 난 욥 곁에, 멀리서 찾아온 세 친구가 이레 밤낮을 말없이 앉아 있었다. 그들은 욥을 위로하려고 서로 약속하고 온 사람들이다(욥 2:11). 그 시대에는 큰 슬픔을 당한 사람 곁에 땅바닥에 함께 앉아 이레 동안 애도하는 것이 친구의 도리였다(창 50:10).
그 시대 사람들은 "하나님은 착한 사람에게 복을, 악한 사람에게 벌을 주신다"고 굳게 믿었다. 세 친구도 그랬다. 그래서 욥이 입을 열자, 친구들은 차례로 일어나 욥을 설득하기 시작한다. 이 장은 그 긴 대화를 욥이 들려주는 이야기다. 친구 셋이 한 사람씩 말하고 욥이 그때마다 대답하는 일이 세 번 되풀이되고, 마지막에 곁에서 듣던 젊은이 엘리후가 끼어든다.
이 장의 사람들: 욥(화자, 모든 것을 잃은 사람), 엘리바스(데만 사람, 세 친구 가운데 늘 먼저 말하는 이), 빌닷(수아 사람, 옛 조상들의 가르침을 내세우는 친구), 소발(나아마 사람, 말이 가장 거친 친구), 엘리후(부스 사람 바라겔의 아들, 곁에서 듣던 젊은이)
욥이 먼저 입을 열다
이레째 밤이 지나고, 먼저 입을 연 것은 나였다. 축복이 아니었다. 내가 태어난 날을 저주했다.
"내가 태어난 그날이 없어져 버렸으면. 사내아이를 배었다고 하던 그 밤도 없어져 버렸으면. 왜 나는 태에서 죽어 나오지 않았나. 왜 어머니 무릎이 나를 받았나. 내가 무서워하던 것이 기어이 나를 덮쳤다. 평안도 없고, 쉼도 없고, 괴로움만 몰려온다."
하나님을 저주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 가장자리까지는 갔다. 친구들은 그 말을 듣고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그들이 보기에 내 말은 하나님께 대드는 말이었다. 친구라면 바로잡아 주어야 했다. 그때부터 긴 대화가 시작되었다.
첫째 이야기: 엘리바스
세 친구 가운데 엘리바스가 먼저 말했다. 말이 부드러웠다. 그래서 더 아팠다.
엘리바스가 하고 싶은 말은 하나였다. 죄 없이 망하는 사람은 없다는 것.
"생각해 보게. 죄 없이 망한 사람이 어디 있었나? 정직한 사람이 끊어진 적이 있었나? 내가 보니 악을 밭 갈듯 갈고 독을 뿌린 자는 그대로 거두더군."
그는 어느 밤 꿈결에 들었다는 소리도 전했다. 머리털이 곤두서는 가운데 한 영이 앞을 지나가며 이렇게 말하더라고 했다. "사람이 어찌 하나님보다 의롭겠느냐. 사람이 어찌 자기를 지으신 분보다 깨끗하겠느냐."
그리고 덧붙였다. "하나님께 꾸지람을 듣는 사람은 복이 있네. 전능하신 분의 훈계를 가볍게 여기지 말게. 그분은 아프게 하시다가도 싸매 주시네."
결국 그 말이었다. 네가 무언가를 심었으니 거두는 것이다. 회개하면 다시 일으켜 주실 것이다. 그는 다정하게 말했지만, 그 다정함 속에서 나는 이미 죄인이 되어 있었다. 그는 내 종기를 보면서 그 종기에서 내 죄를 읽고 있었다.
해설 친구들의 생각은 "고난은 죄의 벌이다"라는 한 줄로 모인다. 성경은 심은 대로 거둔다고 가르치지만(갈 6:7), 모든 고난을 그 사람의 죄로 볼 수는 없다. 독자는 앞 장에서 욥이 "까닭 없이" 고난받는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고, 하나님은 마지막에 친구들의 말이 옳지 않았다고 하신다(욥 42:7).
나는 엘리바스에게 대답했다.
"내 형제라는 사람들이 말라 버린 개울 같구나. 목마른 사람이 찾아가면 물이 없다.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가르쳐 주게. 그러면 입을 다물겠네."
그리고 친구들에게서 고개를 돌려 하늘에 대고 말했다.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토록 크게 여기시고 마음을 쓰십니까. 언제까지 제게서 눈을 떼지 않으시렵니까. 침 한 번 삼킬 동안도 놓아주지 않으십니까."
첫째 이야기: 빌닷
다음은 빌닷이었다. 그는 짧고 단단했다. 옛사람들의 가르침을 믿는 사람이었다.
빌닷이 하고 싶은 말도 하나였다. 하나님은 공평하시니, 내 자식들은 벌을 받은 것이라는 것.
"하나님이 심판을 굽게 하시겠나? 전능하신 분이 공의를 굽게 하시겠나? 자네 자식들이 주께 죄를 지었으니, 주께서 그 죄의 값을 치르게 하신 걸세."
그는 옛 조상들에게 물어보라고 했다. 물 없이 갈대가 자라겠나, 진펄 없이 왕골이 크겠나. 하나님을 잊은 사람도 그렇게 마른다고 했다. "자네가 부지런히 하나님을 찾고 깨끗하고 정직하면, 그분이 반드시 돌아보실 걸세. 시작은 보잘것없어도 끝은 크게 될 걸세."
자식들. 그는 내 열 아이를 그 한마디로 정리했다. 나는 그 말에는 대꾸하지 못했다.
나는 자식들 이야기는 그대로 두고 빌닷에게 대답했다.
"맞는 말이네. 그런데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 앞에서 옳을 수 있겠나. 그분은 나 같은 사람이 아니시니 맞서서 재판할 수도 없네. 우리 둘 사이에 서서 양쪽에 손을 얹어 줄 중재자라도 있다면."
그리고 하나님께 말씀드렸다.
"주님의 손이 저를 빚어 만드셨는데, 이제 저를 부수십니까. 저를 진흙처럼 빚으셨다는 것을 기억해 주십시오."
해설 욥은 하나님과 자기 사이에 서 줄 "중재자"를 바랐다. 신약은 그 자리에 서신 분을 이렇게 말한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고,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중보자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다"(딤전 2:5).
첫째 이야기: 소발
셋째는 소발이었다. 그는 거침이 없었다.
소발이 하고 싶은 말은 더 매서웠다. 나는 받아야 할 벌보다 오히려 덜 받고 있다는 것.
"자네가 그렇게 말을 많이 한다고 옳은 사람이 되겠나? 하나님이 자네에게 내리신 벌은 자네 죄보다 오히려 가벼운 걸세. 자네가 하나님의 깊은 뜻을 다 헤아릴 수 있겠나? 그것은 하늘보다 높고 음부보다 깊다네. 마음을 바로 잡고 손에서 죄를 멀리 버리게. 그러면 자네가 다시 얼굴을 들 걸세."
세 사람이 한 번씩 말하고 나자, 나는 참지 못했다.
"자네들만 사람이고, 지혜는 자네들과 함께 죽겠구먼. 나도 자네들만큼은 아네. 자네들은 거짓말을 지어내는 사람들이고, 다 쓸모없는 의사들이야. 차라리 입을 다물게. 그게 자네들의 지혜일 걸세."
그리고 나는 나도 놀랄 말을 했다.
"그분이 나를 죽이시겠지. 내게는 소망이 없네. 그래도 나는 그분 앞에서 내 길을 변호하겠네."
여자에게서 난 사람은 사는 날이 짧고 괴로움으로 가득하다. 사람이 죽으면 다시 살 수 있는가. 그럴 수만 있다면, 나는 이 고된 날들을 다 견디며 풀려날 날을 기다리겠다.
둘째 이야기: 같은 말이 다시 돌아오다
친구들은 물러서지 않았다. 셋은 같은 차례로 다시 한 사람씩 일어섰다. 이번에는 위로하는 말보다 경고하는 말이 많았다.
엘리바스가 말했다. "자네를 정죄하는 건 내가 아니라 자네 입일세. 우리 가운데는 머리 흰 사람도 있고, 자네 아버지보다 나이 많은 사람도 있네."
나는 대답했다.
"그런 말은 많이 들었네. 자네들은 다 사람을 괴롭히는 위로자로군. 자네들이 내 자리에 있다면, 나도 자네들처럼 말을 지어 내며 머리를 흔들 수 있겠지. 그래도 나라면 입으로 자네들을 붙들어 주었을 걸세."
친구들은 나를 비웃었고, 내 눈은 하나님을 향해 눈물을 흘렸다.
"지금 내 증인이 하늘에 계시네. 나를 보증해 주실 분이 높은 곳에 계셔."
빌닷이 다시 말했다. 악인의 등불은 꺼지고, 그 이름은 땅에서 사라진다고. 그가 말한 악인의 모습은 하나하나 지금의 나였다.
그러자 나는 무너졌다. 형제들은 나를 멀리했고, 아는 사람들은 낯선 사람이 되었다. 아내마저 내 숨 냄새를 싫어했다. 사랑하던 이들이 돌아서서 내 적이 되었다.
"나를 불쌍히 여겨 주게, 친구들아, 나를 불쌍히 여겨 주게. 하나님의 손이 나를 치셨네."
그리고 그 바닥에서, 내가 생각해 본 적도 없는 말이 올라왔다.
"내가 알기로는 나를 건져 주실 분이 살아 계시네. 마지막에 그분이 땅 위에 서실 걸세. 내 이 살갗이 다 썩어 없어진 뒤에라도, 나는 하나님을 뵐 걸세. 내가 직접, 낯선 사람으로가 아니라 내 눈으로 그분을 뵐 걸세. 그 생각에 내 속이 타는구나."
말을 마치고 나서 나는 내 손을 내려다보았다. 고름과 재가 엉겨 있었다. 그런데도 그 말이 거짓 같지 않았다.
해설 "건져 주실 분"(개역한글 "구속자")은 히브리어 "고엘"이다. 집안 사람이 빚이나 종살이에 팔렸을 때 값을 치르고 되찾아 오는 가까운 친척을 말한다. 교회는 이 고백을 훗날 오실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본 말로 읽어 왔다.
소발도 다시 말했다. 악인이 이겼다고 뽐내는 것은 잠깐이고, 그 기쁨은 순간이라고. 셋이 하고 싶은 말은 결국 같았다. 악인은 망한다. 너는 망했다. 마지막 한마디는 끝내 입 밖에 내지 않았지만, 다 들렸다.
나는 되물었다.
"그렇다면 왜 악인들은 잘 사는가. 왜 오래 살고 세력이 커지는가. 그 자식들은 그들 앞에서 굳게 서고, 그 집은 두려움 없이 평안하네."
그들이 말하는 세상과 내가 겪는 세상은 달랐다.
셋째 이야기: 친구들의 말이 바닥나다
엘리바스가 세 번째로 일어섰다. 이번에는 부드러움을 버렸다. 그는 내가 지었을 법한 죄를 하나하나 늘어놓았다.
"자네 죄가 크지 않은가. 까닭 없이 형제의 물건을 저당 잡고, 헐벗은 사람의 옷을 벗기고, 목마른 사람에게 물 한 모금 주지 않고, 굶주린 사람에게 먹을 것을 주지 않았지. 하나님과 화해하고 평안을 누리게. 그러면 복이 올 걸세."
하나도 사실이 아니었다. 그는 내 고통에 맞는 죄를 지어내고 있었다.
나는 그에게 대꾸하는 대신 하나님을 찾았다.
"어디 가야 그분을 만날 수 있을까. 앞으로 가도 안 계시고, 뒤로 가도 보이지 않네. 왼쪽에서 일하셔도 만날 수 없고, 오른쪽으로 돌아서셔도 뵐 수 없네. 그래도 그분은 내가 가는 길을 아시네. 나를 단련하신 뒤에는 내가 순금처럼 나올 걸세."
빌닷의 세 번째 말은 아주 짧았다. "하나님 앞에서 사람이 어찌 의롭겠나. 벌레 같은 사람, 구더기 같은 인생이."
소발은 세 번째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친구들의 말이 바닥난 것이다.
욥의 마지막 말
이제 나만 남았다. 나는 길게 말했다. 마지막이라고 생각했다.
먼저 빌닷에게. "자네는 힘없는 사람을 참 잘도 도왔군." 그리고 그가 말한 하나님을 내 입으로 더 크게 말했다. 그분은 북쪽 하늘을 허공에 펴시고, 땅을 아무것도 없는 곳에 매다셨다. 이런 것들은 그분이 하시는 일의 가장자리일 뿐이고, 우리가 듣는 것은 그분의 작은 속삭임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맹세했다.
"나는 결코 자네들이 옳다고 하지 않겠네. 죽을 때까지 내 온전함을 버리지 않겠네."
사람은 땅속 깊이 굴을 파고 들어가 은과 금과 보석을 캐낸다. 그러나 지혜는 어디서 찾는가. 깨달음은 어디 있는가. 하나님이 사람에게 하신 말씀이 있다. 주님을 두려워하는 것이 지혜이고, 악을 멀리하는 것이 깨달음이라고.
그리고 옛날을 말했다. 말하는 동안 그 시절이 눈앞에 보였다. 아침마다 성문에 나가 광장에 내 자리를 폈다. 젊은이들은 나를 보면 슬며시 몸을 숨겼고, 노인들은 일어나 섰다. 도와 달라고 부르짖는 가난한 사람과 기댈 데 없는 고아를 내가 건졌다. 과부의 마음이 나 때문에 노래했다. 나는 눈먼 사람의 눈이 되고, 다리 저는 사람의 발이 되었다.
"그런데 이제는 나보다 어린 것들이 나를 비웃네. 그 아비들은 내 양 떼 지키는 개들 곁에 두기도 아까운 자들이었는데."
나는 하늘을 보았다.
"주님께 부르짖어도 대답하지 않으십니다. 서 있어도 바라보기만 하십니다."
마지막으로 나는 내가 하지 않은 일들을 하나하나 손가락을 꼽듯이 늘어놓았다. 젊은 여자를 탐내어 보지 않았다. 남종이나 여종이 내게 따질 때 그 사정을 무시한 적이 없다. 가난한 사람의 바람을 막은 적 없고, 과부의 눈을 실망시킨 적 없다. 나 혼자 먹고 고아를 굶긴 적 없다. 금을 내 소망으로 삼은 적 없다. 나를 미워하는 사람이 망할 때 기뻐한 적 없다. 나그네를 길에서 자게 한 적 없이 언제나 문을 열어 주었다. 그런 일이 있었다면 내 밭에 밀 대신 가시가 나도 좋다.
"여기 내 서명이 있네. 이제 전능하신 분이 내게 대답하시기를."
나는 입을 닫았다. 할 말이 더는 없었다. 세 친구도 더는 대답하지 않았다. 내가 끝까지 스스로 옳다고 했기 때문이다.
젊은 엘리후가 끼어들다
그때 곁에서 듣고만 있던 한 젊은이가 일어섰다. 람 집안, 부스 사람 바라겔의 아들 엘리후. 우리보다 나이가 적어서 그때까지 잠자코 있던 사람이었다.
그는 화가 나 있었다. 내게는 내가 하나님보다 나 자신이 옳다고 했기 때문이고, 세 친구에게는 아무 답도 내놓지 못하면서 나를 죄인으로 몰았기 때문이었다.
"저는 나이가 어리고 어르신들은 연세가 많으셔서, 참고 감히 제 생각을 말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제 속에 말이 가득 찼습니다. 제 가슴은 막아 둔 포도주 같아서, 새 가죽 부대처럼 터질 것 같습니다."
세 친구는 놀라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나도 그를 막지 않았다.
엘리후의 말은 친구들과 조금 달랐다. 고난은 벌만이 아니라, 하나님이 사람을 깨우쳐 돌이키시는 길일 수 있다는 것이었다.
"하나님은 한 번 말씀하시고 또 말씀하십니다. 사람이 알아듣지 못할 뿐입니다. 잠든 밤의 꿈으로도 말씀하시고, 병상의 고통과 뼈를 쑤시는 아픔으로도 말씀하십니다."
그때 천 명의 천사 가운데 하나라도 그 사람 편에 서서 바른길을 일러 준다면, 하나님이 그를 불쌍히 여겨 이렇게 말씀하신다고 했다. "그를 건져서 무덤에 내려가지 않게 하라. 내가 그 대신 치를 값을 얻었다."
해설 "그 대신 치를 값"(개역한글 "대속물")이라는 말은 훗날 예수님이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신다고 하신 말씀(막 10:45)과 이어진다. 하나님은 마지막에 세 친구는 꾸짖으시지만 엘리후는 따로 언급하지 않으셔서, 그를 어떻게 볼지는 풀이가 갈린다.
엘리후는 나를 보며 말을 이었다.
"하나님은 결코 악을 행하지 않으십니다. 전능하신 분은 공의를 굽히지 않으십니다. 그런데 욥은 헛되이 입을 열어 알지도 못하는 말을 늘어놓는군요. 하나님은 크셔서 우리가 다 알 수 없습니다. 그분의 햇수는 셀 수도 없습니다."
그는 하늘을 가리키며 목소리를 높였다. 비와 번개와 천둥을 부리시는 분을 보라고, 그분의 우렁찬 소리를 들어 보라고 했다.
"북쪽에서 금빛 광채가 나옵니다. 하나님께는 두려운 위엄이 있습니다. 전능하신 분을 우리는 헤아릴 수 없습니다."
아무도 그에게 대답하지 않았다. 나도.
바람이 먼지를 휘감아 올렸다. 잿더미가 날렸다. 그리고 그 폭풍 속에서, 내 이름을 아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