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권 창조와 족장 · 욥기 1-2장
제8장 우스 땅의 사람 욥
우스 땅. 가나안 동쪽, 지금의 요르단 남쪽이나 아라비아 북쪽 어디쯤으로 짐작되는 넓은 들이다. 욥이 언제 살았는지 성경은 밝히지 않는다. 다만 이야기 속에 율법도 성전도 나오지 않고, 집안의 가장이 직접 제물을 바치며, 부자인지 아닌지를 양과 낙타가 몇 마리인지로 세는 것을 보고 족장 시대 사람으로 보는 이들이 많다. 이 책은 그 풀이를 따라 욥의 이야기를 아브라함이 부름받기 전 자리에 둔다.
이 장은 욥이 들려주는 이야기다. 우스 땅에서 가장 큰 부자였고, 성경이 "흠 없고 정직하며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악을 멀리한 사람"이라고 부르는 사람이다.
이 장의 사람들: 욥(화자, 우스 땅의 큰 부자), 욥의 아내, 욥의 자녀 열(아들 일곱, 딸 셋), 사탄(하나님 앞에 서서 욥을 고소하는 자), 엘리바스, 빌닷, 소발(욥의 세 친구)
새벽이었다. 나는 아직 어두울 때 일어나 제단 앞에 섰다. 종들이 숫양을 끌고 왔다. 열 마리. 아들 일곱, 딸 셋. 한 아이에 한 마리씩.
어젯밤까지 잔치가 있었다. 아들들은 저마다 자기 생일이 돌아오면 자기 집에서 잔치를 열었고, 누이 셋도 꼭 불렀다. 먹고 마시고 웃었다. 형제들이 그렇게 지내는 것을 보는 게 나는 좋았다. 그래도 잔치가 끝나면 아이들을 불러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하게 했다. 그리고 이렇게 새벽 제사를 드렸다.
혹시 내 아이들이 죄를 지어서, 마음속으로라도 하나님을 저버렸을지 모른다. 입 밖에 낸 말이 아니라 마음으로. 그건 아비인 나도 알 수 없었다. 그래서 한 번도 거르지 않았다.
불이 붙자 기름 타는 냄새가 올라왔다. 동쪽 하늘이 밝아 오고, 들판 저쪽에서 양 떼 우는 소리가 들렸다. 양이 칠천, 낙타가 삼천, 밭 가는 소가 오백 겨리, 암나귀가 오백. 종들도 많았다. 사람들은 나를 동방에서 가장 큰 사람이라고 불렀다. 그 모든 것이 누구에게서 왔는지 나는 알고 있었다. 적어도 안다고 생각했다.
제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니 아내가 문간에 서 있었다. 어젯밤 아이들 집에서 들려오던 웃음소리 이야기를 했다. 나는 웃었다. 손에 묻은 재를 털면서도 웃음이 남아 있었다. 그날 아침의 그 웃음을 나는 오래 기억했다. 그 뒤로는 그렇게 웃을 일이 오래 없었다.
그 무렵, 하늘에서
여기서부터는 욥이 아니라 하늘에서 있었던 일이다. 욥도, 땅에 있는 누구도 이 일을 알지 못했다.
어느 날 하나님의 아들들, 곧 하나님을 섬기는 하늘의 존재들이 와서 여호와 앞에 섰다. 사탄도 그들 틈에 끼어 왔다. 여호와께서 사탄에게 물으셨다.
너는 어디에서 왔느냐?
사탄이 대답했다. "땅을 두루 돌아다니며 여기저기 다녀왔습니다."
여호와께서 다시 물으셨다.
너는 내 종 욥을 눈여겨보았느냐? 그 사람처럼 흠 없고 정직하며,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악을 멀리하는 사람은 세상에 없다.
사탄이 대답했다. "욥이 공연히 하나님을 두려워하겠습니까? 주께서 그와 그 집과 그가 가진 모든 것을 울타리로 둘러 지켜 주시지 않았습니까? 그가 손대는 일마다 복을 주셔서 그의 재산이 온 땅에 넘치게 하셨습니다. 이제 손을 뻗어 그가 가진 것을 다 쳐 보십시오. 그러면 그는 틀림없이 주님 앞에서 대놓고 주님을 저주할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사탄에게 이르셨다.
그가 가진 모든 것을 네 손에 맡긴다. 다만 그의 몸에는 손을 대지 마라.
사탄은 곧 여호와 앞에서 물러갔다.
사람이 아무 이득 없이도 하나님을 섬기느냐. 사탄이 던진 물음은 그것이었다. 그 물음의 답은 이제 우스 땅의 한 사람, 욥에게 달려 있었다.
해설 "사탄"은 히브리어로 "고소하는 자, 맞서는 자"라는 뜻이다. 사탄은 하나님과 맞먹는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 서서 대답해야 하는 피조물이고, 하나님이 허락하신 선을 넘지 못한다. 처음에는 재산까지, 다음에는 목숨 앞에서 멈춘다. 하나님은 고난을 허락하셨지만 악을 행하신 분은 아니다(약 1:13).
다시 우스 땅, 욥의 이야기
그 일이 있은 뒤 어느 날, 맏아들 집에서 잔치가 있었다. 아이들 열이 모두 거기 모여 먹고 포도주를 마셨다. 나는 집에 있었다.
종 하나가 뛰어 들어왔다. 옷이 찢어지고 얼굴은 흙투성이였다.
"소들은 밭을 갈고 나귀들은 그 곁에서 풀을 뜯고 있었는데, 스바 사람들이 갑자기 들이닥쳐 다 빼앗아 갔습니다. 종들은 칼에 맞아 죽었습니다. 저 혼자 살아서 주인님께 알리러 왔습니다."
내가 대답하기도 전에 또 한 사람이 들어왔다.
"하늘에서 하나님의 불이 떨어져 양 떼와 종들을 다 태워 버렸습니다. 저 혼자 살아서 알리러 왔습니다."
그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또 한 사람.
"갈대아 사람들이 세 무리로 나뉘어 낙타 떼를 덮쳐 다 끌고 갔습니다. 종들은 칼에 죽었습니다. 저 혼자 살아서 알리러 왔습니다."
저 혼자. 저 혼자. 같은 말이 되풀이되는 동안 나는 서 있기만 했다. 머릿속으로 숫자를 세고 있었던 것 같다. 소, 나귀, 양, 낙타. 재산이 무너지는 소리였다. 그때까지는 아직 그것뿐이었다.
네 번째 사람이 들어왔다. 그는 숨을 몰아쉬면서 내 얼굴을 보지 못했다.
"주인님의 자녀들이 맏아드님 댁에서 먹고 포도주를 마시고 있었는데, 광야 쪽에서 큰 바람이 불어와 집 네 모퉁이를 쳤습니다. 집이 젊은 분들 위로 무너져 모두 죽었습니다. 저 혼자 살아서 알리러 왔습니다."
열. 하나도 남지 않았다.
누군가 맏아들의 집 쪽으로 달려가는 발소리가 들렸다. 나는 가지 않았다. 다리가 움직이지 않았다. 등 뒤에서 아내가 무너지는 소리가 났다. 소리라고 할 수도 없는 소리였다. 나는 돌아보지 못했다. 돌아보면 그 얼굴을 보아야 했다.
새벽마다 열 마리를 바쳤다. 한 아이에 한 마리씩. 그 숫자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나는 일어나 겉옷을 찢었다. 머리털을 밀었다. 그리고 땅에 엎드렸다. 엎드려서 경배했다. 그 밖에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아니, 그것만은 할 수 있었다.
"나는 어머니 배에서 빈손으로 나왔으니, 빈손으로 그리로 돌아갈 것입니다. 주신 분도 여호와시고, 가져가신 분도 여호와시니,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합니다."
그 말을 할 때 나는 울고 있었다. 그래도 그 말은 진심이었다. 그날 나는 하나님께 잘못을 돌리지 않았다.
해설 종이 "하나님의 불"이라고 부른 불과 집을 무너뜨린 바람은, 하나님이 허락하신 범위 안에서 사탄이 일으킨 것이었다. 욥은 그 사정을 모른 채 모든 것을 하나님 손에 맡겼다. 성경은 이때 욥이 범죄하지 않았고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다고 분명히 말한다(욥 1:22). 신약 야고보서는 욥의 인내를 본보기로 든다(약 5:11).
다시, 하늘에서
이번에도 욥이 알지 못한 하늘의 일이다.
또 하루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여호와 앞에 섰고, 사탄도 그들 가운데 와서 섰다. 여호와께서 사탄에게 물으셨다.
너는 어디에서 왔느냐?
사탄이 대답했다. "땅을 두루 돌아다니며 여기저기 다녀왔습니다."
여호와께서 다시 물으셨다.
너는 내 종 욥을 눈여겨보았느냐? 그 사람처럼 흠 없고 정직하며,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악을 멀리하는 사람은 세상에 없다. 네가 나를 부추겨 까닭 없이 그를 치게 했는데도, 그는 여전히 자기의 온전함을 굳게 지키고 있다.
사탄이 대답했다. "가죽은 가죽으로 바꾸는 법입니다. 사람은 제 목숨을 지키려면 가진 것을 다 내놓습니다. 이제 손을 뻗어 그의 뼈와 살을 쳐 보십시오. 그러면 그는 틀림없이 주님 앞에서 대놓고 주님을 저주할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사탄에게 이르셨다.
그를 네 손에 맡긴다. 다만 그의 목숨은 건드리지 마라.
사탄은 여호와 앞에서 물러갔다.
해설 여기서 하나님이 직접 "까닭 없이"라고 하신다. 욥의 고난은 욥이 지은 죄에 대한 벌이 아니었다. 독자는 이 하늘의 일을 알지만, 욥도 친구들도 고난을 겪는 내내 이 사정을 알지 못했다. 이것이 욥기 전체를 읽는 열쇠다. 예수님도 날 때부터 눈먼 사람을 두고 "이 사람이나 그 부모의 죄 때문이 아니다"라고 하셨다(요 9:3).
다시 우스 땅, 욥의 이야기
얼마 뒤, 발바닥에서 정수리까지, 온몸에 악한 종기가 돋았다. 화끈거리고 가려웠다. 누우면 등이 터졌고 앉으면 다리가 터졌다.
나는 집을 나와 잿더미 가운데 앉았다. 깨진 질그릇 조각을 하나 주워 몸을 긁었다. 긁으면 고름이 나왔고, 고름이 마르면 또 가려웠다. 파리가 들러붙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멀찍이 돌아갔다.
아내가 왔다. 그 사람도 열 아이를 잃었다. 나만 잃은 게 아니었다. 그녀가 내 앞에 서서 한참을 보았다.
"당신은 아직도 그 온전함을 붙들고 있어요? 하나님을 저주하고 죽어 버려요."
그 말이 얼마나 지쳐서 나온 말인지 나는 안다. 그래도 그 말만은 받아 줄 수 없었다.
"당신 말이 어리석은 여자들이 하는 말 같구려.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았는데, 재앙은 받지 말아야 하겠소?"
그날도 나는 입술로 죄를 짓지 않았다.
내게 닥친 일이 멀리까지 소문이 났다. 내 친구 셋이 그 소식을 듣고 각자 사는 곳에서 길을 나섰다. 데만 사람 엘리바스, 수아 사람 빌닷, 나아마 사람 소발. 나를 위로하려고 서로 약속하고 함께 왔다.
그들은 멀리서 나를 보았다. 그리고 알아보지 못했다. 잿더미 위에 앉은 저 헐벗은 것이 욥인 줄 몰랐다. 가까이 와서야 알았다. 셋이 한꺼번에 소리 내어 울었다. 저마다 겉옷을 찢고, 하늘을 향해 흙먼지를 날려 제 머리에 뒤집어썼다.
그리고 내 곁 땅바닥에 앉았다.
이레 낮과 이레 밤을 그렇게 앉아 있었다. 아무도 한마디 하지 않았다. 내 고통이 너무 커 보여서였다. 해가 뜨고 지고, 별이 돌고, 질그릇 조각이 내 살을 긁는 소리만 들렸다. 낮에는 햇볕이 재를 달구었고 밤에는 이슬이 내려 종기 위를 식혔다.
나는 그 침묵이 고마웠다. 그들이 무슨 말을 했다면 나는 견디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침묵이 길어질수록 내 안에서 무언가가 차올랐다. 삼킬 수도 뱉을 수도 없는 것이었다.
이레째 밤이 지났을 때, 먼저 입을 연 것은 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