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권 창조와 족장 · 창세기 6-8장
제6장 홍수
아담 이후 천육백 년쯤 지났을 때의 이야기다. 사람은 온 땅에 퍼졌고, 그만큼 악도 퍼졌다. 셋의 자손 가운데 므두셀라의 손자 노아가 있었다. 그는 이 무렵 오백 살이 넘었고 셈, 함, 야벳 세 아들을 두었다. 이 장에 나오는 "규빗"은 팔꿈치에서 손끝까지의 길이로, 약 45센티미터다. 홍수가 끝나고 방주가 멈춘 아라랏 산지는 지금의 튀르키예 동쪽 끝, 아르메니아와 이란에 맞닿은 높은 산악 지대다.
이 장은 노아가 들려주는 이야기다. 하나님의 명령으로 방주를 짓고, 그 안에서 일 년 넘게 물 위를 떠다닌 사람이다.
이 장의 사람들: 노아(화자, 라멕의 아들, 므두셀라의 손자), 셈, 함, 야벳(노아의 세 아들), 노아의 아내와 세 며느리, 므두셀라(노아의 할아버지, 홍수 나던 해에 죽음), 라멕(노아의 아버지)
사람들은 먹고 마셨다.
장가가고 시집갔다. 내가 나무를 베고, 다듬고, 마른 땅 한가운데 거대한 뼈대를 세우는 동안에도 그랬다. 처음에는 걸음을 멈추고 쳐다보는 사람도 있었다. 몇 해가 지나자 그마저 없었다. 아무도 묻지 않았다. 아무도 듣지 않았다.
나는 내가 들은 것을 말했다. 그들은 귀담아듣지 않았다. 그들이 무엇을 하며 살았는지는 말해야 한다.
사람이 땅 위에 많아지기 시작했다. 딸들이 태어났다. 그러자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을 보고 아름답다고 여겨, 마음에 드는 대로 골라 아내로 삼았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다.
나의 영이 사람과 영원히 함께하지는 않을 것이다. 사람은 육체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날은 백이십 년이 될 것이다.
그 무렵 땅에는 네피림이 있었다. 그 뒤로도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에게서 자식을 낳았는데, 그들은 힘센 용사들이었고 옛날부터 이름난 사람들이었다.
해설 "하나님의 아들들"이 누구인지는 두 풀이가 있다. 하나는 하나님을 섬기던 셋의 자손들이 하나님을 모르는 가인 쪽 여자들과 마구 섞였다는 풀이, 다른 하나는 타락한 천사들이 사람의 딸들을 취했다는 풀이다(벧후 2:4, 유 1:6을 근거로 든다). "네피림"은 "쓰러뜨리는 자" 또는 "거인"으로 풀이되는 말이다. 어느 쪽이든 하나님이 정하신 경계가 무너지고 폭력이 세상을 덮었다는 것이 핵심이다.
나는 그 이름난 사람들을 안다. 힘이 세고 목소리가 컸다. 그들이 지나가면 사람들이 길을 비켰다. 원하는 것은 빼앗았고, 막는 사람은 쓰러뜨렸다. 땅에는 폭력이 가득했다. 하나님 앞에서 온 땅이 썩어 있었다. 사람이 사는 방식 자체가 썩어 버린 것이다.
여호와께서는 사람의 악이 세상에 가득하고, 그 마음으로 생각하고 꾸미는 것이 언제나 악하기만 한 것을 보셨다. 그리고 땅 위에 사람을 지으신 것을 후회하시고 마음 아파하셨다.
내가 지은 사람을 땅 위에서 쓸어버리겠다. 사람뿐 아니라 짐승과 기어 다니는 것과 하늘의 새까지 그렇게 하겠다. 내가 그것들을 지은 것이 후회스럽다.
그 말씀을 처음 들었을 때 나는 하나님이 아파하신다는 것이 가장 무서웠다. 화가 나신 것보다. 처음 세상을 지으시고 "아주 좋다"고 하셨던 분이었다.
해설 하나님이 "후회하셨다"는 말은 실수를 깨달으셨다는 뜻이 아니다. 성경은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시니 후회하지 않으신다고도 말한다(민 23:19, 삼상 15:29). 처음부터 다 아시는 분이지만, 사람의 악을 보시고 실제로 마음 아파하셨다는 것을 사람의 말로 표현한 것이다. 하나님은 무심한 분이 아니시다.
그러나 나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다.
내가 잘나서가 아니었다. 은혜가 먼저였다. 나는 그 세대 사람들 가운데 바르게 살려고 애쓴 사람이었다. 증조할아버지 에녹이 그랬던 것처럼, 하나님과 함께 걸으려고 했다. 그런데 그 걸음조차 그분이 먼저 붙들어 주셨기 때문에 걸을 수 있었다.
해설 성경은 노아를 의인이라고 소개하기 전에 먼저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다"고 말한다(창 6:8-9). 노아가 구원받은 것은 공로의 대가가 아니라 은혜였고, 그는 그 은혜를 믿음으로 받았다. 히브리서는 노아가 "믿음으로" 방주를 지었다고 하고(히 11:7), 베드로는 그를 "의를 전파하는 노아"라고 부른다(벧후 2:5).
하나님이 나에게 말씀하셨다.
모든 사람의 끝이 내 앞에 왔다. 그들 때문에 땅에 폭력이 가득하다. 내가 그들을 땅과 함께 멸하겠다. 너는 잣나무로 너를 위해 방주를 만들어라. 그 안에 칸들을 나누고, 안팎에 역청을 칠해라. 길이는 삼백 규빗, 너비는 오십 규빗, 높이는 삼십 규빗으로 해라. 지붕 아래 한 규빗 높이로 창을 내고, 문은 옆으로 내고, 아래층과 가운데층과 위층, 삼 층으로 지어라.
내가 땅에 홍수를 일으켜, 하늘 아래 숨 쉬는 모든 생명을 없애겠다. 땅에 있는 것은 다 죽을 것이다. 그러나 너와는 내가 언약을 세우겠다. 너는 네 아들들과 네 아내와 며느리들과 함께 방주에 들어가라. 그리고 살아 있는 모든 것을 암수 한 쌍씩 방주에 들여서 너와 함께 살아남게 해라. 새가 종류대로, 가축이 종류대로, 땅에 기는 것이 종류대로, 둘씩 너에게 올 것이다. 그들을 살려라. 너는 먹을 것을 모두 가져다 쌓아 두어라. 너와 그들이 먹을 양식이다.
삼백 규빗. 나는 그 길이를 땅 위에 밧줄로 재어 보았다. 끝에서 끝까지 걸어가는 데 한참 걸렸다. 그만한 배를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나도 없었다.
그래도 나는 했다. 하나님이 명령하신 대로 다 했다.
세 아들이 나무를 날랐다. 나는 칸을 나누고 들보를 걸었다. 끓인 역청 냄새가 날마다 옷에 배었다. 손바닥의 굳은살 위에 다시 굳은살이 앉았다. 해가 바뀌고 또 바뀌었다. 할아버지 므두셀라는 홍수가 나던 바로 그해에 세상을 떠났다. 아버지 라멕은 그보다 몇 해 앞서 갔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다.
너와 네 온 가족은 방주로 들어가라. 이 세대에 네가 내 앞에서 의롭게 사는 것을 내가 보았다. 깨끗한 짐승은 암수 일곱 쌍씩, 깨끗하지 않은 짐승은 암수 한 쌍씩 데려가라. 하늘의 새도 암수 일곱 쌍씩 데려가서, 그 씨가 온 땅에 살아남게 해라. 이제 이레가 지나면, 내가 사십 일 밤낮 땅에 비를 내려 내가 지은 모든 생물을 땅 위에서 쓸어버리겠다.
나는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대로 다 했다.
그리고 그것들이 왔다. 내가 찾아가 끌고 온 것이 아니었다. 그들이 왔다. 새들은 하늘에서 내려와 방주 지붕에 줄지어 앉았다. 가축과 들짐승과 땅에 기는 것들도 왔다. 하나님이 명령하신 대로 암수 둘씩 나에게 와서 방주로 들어갔다. 아들들은 입을 벌리고 서 있었다. 나도 그랬다.
이레가 지났다. 내 나이 육백 살 되던 해, 둘째 달 열이렛날이었다.
그날 나와 셈과 함과 야벳, 내 아내와 세 며느리가 방주에 들어갔다. 모든 짐승도 종류대로 다 들어갔다. 숨 쉬는 모든 것의 암수가 하나님이 명령하신 대로 들어갔다.
그리고 여호와께서 문을 닫으셨다.
내가 닫은 것이 아니었다. 무거운 문이 바깥에서 밀려 닫히는 소리가 났다. 안에 있는 사람 누구도 손대지 않았다. 그 소리가 아직도 귀에 남아 있다. 그 문은 우리를 가두는 문이 아니라 지키는 문이었다. 그리고 바깥의 누구에게도 다시 열리지 않을 문이었다.
해설 예수님은 자신이 다시 오실 때가 노아의 때와 같을 것이라고 하셨다. 사람들이 먹고 마시다가 홍수가 나서 다 멸할 때까지 깨닫지 못했다는 것이다(마 24:37-39). 하나님이 직접 닫으신 방주의 문, 그 안에 들어간 사람만 산 일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이 구원받는 것을 보여 주는 그림으로 읽혀 왔다(벧전 3:20-21).
그날 땅 밑 깊은 곳의 샘들이 한꺼번에 터지고, 하늘의 창문들이 열렸다. 비가 사십 일 밤낮으로 땅에 쏟아졌다.
처음에는 지붕을 두드리는 소리뿐이었다. 그러다 바닥이 기울었다. 방주가 땅에서 떠올랐다. 물은 계속 불어났다. 방주는 물 위를 떠다녔다. 하늘 아래 높은 산들이 다 잠겼다. 물은 산꼭대기보다 열다섯 규빗이나 더 높이 올라갔다.
처음 며칠 동안은 빗소리 사이로 바깥의 소리도 들렸다. 그 뒤로는 빗소리와 물소리뿐이었다.
땅 위에 움직이던 모든 생물이 죽었다. 새와 가축과 들짐승과 땅에 기는 모든 것, 그리고 모든 사람. 마른 땅에서 코로 숨 쉬던 것은 다 죽었다. 하나님은 땅 위의 모든 생명을 쓸어버리셨다. 남은 것은 나와 방주 안에 함께 있던 것들뿐이었다.
물은 백오십 일 동안 땅을 덮고 있었다.
방주 안은 어두웠고, 짐승 냄새와 젖은 나무 냄새로 가득했다. 우리는 먹이를 나르고, 오물을 치우고, 잠깐씩 잤다. 날이 가는 것을 나무 기둥에 금을 그어 셌다. 아무도 바깥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아내는 매일 밤 짐승들 사이를 한 바퀴 돌았다. 등잔을 들고, 우리마다 들여다보며 물통을 채웠다. 며느리들이 따라다녔다. 아무 말 없이 하는 일이었다. 나는 그 등잔불이 칸막이 사이로 흔들리며 지나가는 것을 누워서 보았다. 그 불빛이 있는 동안은 세상이 아직 끝나지 않은 것 같았다.
가끔 함이 위층 창 쪽을 올려다보았다. 셈은 기둥에 그은 금을 손가락으로 세었다. 야벳은 잠을 많이 잤다. 저마다 견디는 방법이 달랐다.
하나님이 나를 기억하셨다. 방주 안의 모든 짐승과 가축도 기억하셨다. 하나님은 땅 위에 바람을 보내셨고, 물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땅 밑 깊은 곳의 샘과 하늘의 창문이 닫히고, 하늘에서 비가 그쳤다. 물은 조금씩 땅에서 물러갔다.
일곱째 달 열이렛날, 방주가 덜컥 멈췄다. 아라랏 산에 걸린 것이다. 물은 계속 줄어서 열째 달 초하룻날에는 산봉우리들이 보였다.
사십 일을 더 기다렸다가 나는 방주에 낸 창을 열고 까마귀를 내보냈다. 까마귀는 땅에서 물이 다 마를 때까지 이리저리 날아다녔다.
다음에는 비둘기를 내보냈다. 땅에 물이 빠졌는지 알고 싶었다. 그러나 온 땅이 아직 물에 덮여 있어서 비둘기는 발 디딜 곳을 찾지 못하고 돌아왔다. 나는 손을 내밀어 비둘기를 받아 방주 안으로 들였다. 가슴이 빠르게 뛰고 있었다.
이레를 더 기다려 다시 비둘기를 내보냈다. 저녁때 비둘기가 돌아왔다. 부리에 올리브 잎이 물려 있었다. 방금 딴 새 잎이었다.
나는 그 잎을 한참 손에 들고 있었다. 작고 푸르고, 젖어 있었다. 어딘가에서 나무가 다시 잎을 내고 있었다. 그날 밤 나는 처음으로 깊이 잤다.
이레를 또 기다려 비둘기를 내보냈다. 이번에는 돌아오지 않았다.
내 나이 육백한 살 되던 해, 첫째 달 초하룻날, 땅에서 물이 걷혔다. 나는 방주 뚜껑을 걷어 내고 밖을 보았다. 땅바닥이 드러나 있었다. 그리고 둘째 달 스무이렛날, 땅이 다 말랐다.
하나님이 나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네 아내와 아들들과 며느리들과 함께 방주에서 나오너라. 너와 함께 있는 모든 생물, 곧 새와 가축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 데리고 나오너라. 그것들이 땅에서 새끼를 많이 낳고 불어날 것이다.
우리는 나왔다. 짐승들도 종류대로 방주에서 나왔다. 그들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사방으로 흩어졌다. 땅은 진흙투성이였고 낯설었다. 우리가 알던 마을도, 길도, 무덤도 없었다.
나는 발밑의 흙을 한 줌 쥐어 보았다. 차갑고 축축했다. 손가락 사이로 물이 배어 나왔다. 아담 할아버지가 지어진 그 흙. 저주를 받은 그 흙. 그리고 이제 물에 씻긴 흙. 일 년 넘게 나무 바닥만 밟던 발이 땅에 닿자 다리가 휘청거렸다. 며느리 하나가 울음을 터뜨렸다. 아무도 달래지 않았다. 다들 같은 마음이었다.
나는 제일 먼저 돌을 모았다. 여호와께 제단을 쌓았다. 그리고 깨끗한 짐승과 깨끗한 새 가운데서 골라 제단 위에 번제로 드렸다. 통째로 태워 바치는 제사였다. 연기가 젖은 하늘로 곧게 올라갔다.
여호와께서 그 향기를 기쁘게 받으시고 마음속으로 말씀하셨다.
내가 다시는 사람 때문에 땅을 저주하지 않겠다. 사람은 어려서부터 마음에 품는 생각이 악하기 때문이다. 이번에 한 것처럼 모든 생물을 다시 멸하지는 않겠다. 땅이 있는 동안에는 씨 뿌리는 때와 거두는 때, 추위와 더위, 여름과 겨울, 낮과 밤이 그치지 않을 것이다.
사람은 달라지지 않았다. 하나님은 그것을 아셨다. 그래도 다시는 이렇게 하지 않겠다고 하셨다.
나는 제단 앞에 오래 서 있었다. 바람이 차가웠다. 저 멀리 산등성이 위로 구름이 낮게 깔려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