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권 창조와 족장 · 창세기 5장

제5장 에녹과 므두셀라

가인이 동쪽으로 떠난 뒤, 아담과 하와에게서 난 셋의 자손이 대를 이어 가던 시대의 이야기다. 이 무렵 사람들은 수백 년을 살았다. 아담은 구백삼십 년을 살았고, 그 자손들도 대개 구백 년 안팎을 살았다. 그래서 한 사람이 살아 있는 동안 여덟 대, 아홉 대의 자손을 보는 일이 흔했다. 이 장에는 아담에서 노아까지 열 대의 이름이 이어진다.

이 장은 므두셀라가 들려주는 이야기다. 셋의 자손 에녹의 아들이고, 성경에 기록된 사람 가운데 가장 오래, 구백육십구 년을 산 사람이다.

이 장의 사람들: 므두셀라(화자, 에녹의 아들), 아담(첫 사람, 므두셀라의 7대 조상), 야렛(므두셀라의 할아버지), 에녹(므두셀라의 아버지, 하나님과 동행한 사람), 라멕(므두셀라의 아들), 노아(라멕의 아들, 므두셀라의 손자)

나는 아담을 보았다.

이렇게 말하면 사람들은 믿지 않는다. 그런데 셈을 해 보면 맞다. 아담이 숨을 거둘 때 나는 이백 살을 넘긴 어른이었다. 아버지를 따라 그분의 집에 여러 번 갔다. 흙으로 지어진 첫 사람. 하나님의 숨을 처음 받은 사람.

그분은 아주 늙어 있었다. 손이 컸고 손가락 마디가 굵었다. 평생 땅을 간 손이었다. 우리가 찾아가면 그분은 문간에 앉아 동쪽을 바라보곤 했다. 에덴이 있던 쪽, 불칼이 도는 쪽이었다.


하나님이 사람을 지으실 때, 하나님의 모습대로 지으셨다. 남자와 여자로 지으시고, 그들이 지어지던 날 복을 주시고 그들을 "사람"이라고 부르셨다.

아담은 백서른 살에 자기를 닮은 아들을 낳았다. 자기 모습 그대로였다고 한다. 그 아들이 셋이다. 아담은 셋을 낳은 뒤 팔백 년을 더 살며 아들딸을 낳았고, 구백삼십 살에 죽었다.

해설 아담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어졌고, 셋은 "아담의 형상"을 닮아 태어났다. 하나님의 형상은 이어졌지만, 죄로 망가진 아담의 모습도 함께 물려받았다는 뜻으로 읽는다. 바울은 한 사람으로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죽음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다고 말한다(롬 5:12). 이 장 이름들 끝에 붙는 "그리고 죽었다"가 그 증거다.

나는 그날을 기억한다. 집 안에 사람이 가득했다. 자식과 손자와 그 손자의 손자들. 몇 대가 한자리에 있는지 아무도 셀 수 없었다. 아담은 누워서 천장을 보고 있었다. 숨이 길게 들어갔다가 짧게 나왔다. 그러다 들어가지 않았다.

방 안이 조용해졌다.

사람이 늙어서 죽는 것을 나는 그때 처음 보았다. 흙에서 났으니 흙으로 돌아간다는 말씀. 할아버지들에게 수없이 들었던 그 말씀이 그날 눈앞에서 이루어졌다. 구백삼십 년. 그렇게 오래 살아도 결국은 돌아갔다. 장례를 치르고 돌아오는 길에 아버지가 내 어깨에 손을 얹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뒤로 이름들이 이어졌다.

셋은 에노스를 낳았고, 에노스는 게난을, 게난은 마할랄렐을, 마할랄렐은 야렛을 낳았다. 야렛이 내 할아버지다. 할아버지는 백예순두 살에 내 아버지 에녹을 낳았다. 그들은 모두 아들딸을 낳으며 오래 살았고, 그리고 모두 죽었다. 셋은 구백십이 년, 에노스는 구백오 년, 게난은 구백십 년, 마할랄렐은 팔백구십오 년, 야렛은 구백육십이 년. 누가 언제 났고 언제 죽었는지 끝에 다 적어 두었다. 족보표 1

그 이름들 끝에는 늘 같은 말이 붙었다. "그리고 죽었다." 나는 어릴 때 그 말이 북소리 같다고 생각했다. 둥, 둥, 둥. 한 사람이 끝나면 다음 사람. 아무도 빠지지 않았다.

내 아버지만 빼고.


아버지 에녹은 예순다섯에 나를 낳았다.

그리고 나를 낳은 뒤로 삼백 년 동안 하나님과 함께 걸었다. 사람들은 이 대목을 들으면 무언가 대단한 일이 있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내가 본 아버지의 삶은 그렇게 요란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아침에 일어나 일하고, 밥을 먹고, 우리를 돌보고, 아들딸을 더 낳았다.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살았다.

다른 점이 있다면 아버지는 늘 누군가와 함께 있는 사람 같았다는 것이다.

밭에서 혼자 일할 때도 입술이 움직였다. 저녁에 언덕을 걸을 때는 가끔 걸음을 멈추고 귀를 기울였다. 무슨 소리를 듣는 것 같았다. 어린 나는 아버지 뒤를 따라 걸으며 그게 무엇인지 알고 싶었다. "아버지, 누구랑 얘기해요?" 아버지는 웃기만 했다. 그리고 내 손을 잡고 계속 걸었다.

한번은 해가 다 지도록 돌아오지 않는 아버지를 찾으러 나간 적이 있다. 아버지는 언덕 꼭대기 바위에 앉아 있었다. 별이 하나둘 돋고 있었다. 내가 옆에 앉자 아버지는 아무 말 없이 내 어깨를 끌어안았다. 그리고 우리는 별이 다 돋을 때까지 그렇게 앉아 있었다.

나는 그때 아버지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 뒤로 육백 년이 넘게 지나는 동안 조금씩 이해했다. 함께 걷는다는 건 어디로 가느냐보다 누구 곁에서 가느냐의 문제였다. 아버지는 그분 곁에서 떨어진 적이 없었다. 삼백 년 동안.

그 시절 세상은 이미 어두워지고 있었다. 동쪽 가인의 성에서 들려오는 소문은 점점 험해졌다. 라멕이라는 자가 사람을 죽이고 노래를 불렀다는 이야기도 그때 들었다. 아버지는 그런 소식을 들을 때마다 얼굴이 굳었다. 그래도 아버지는 걸음을 바꾸지 않았다.


아버지가 삼백육십다섯 살 되던 해였다.

그날도 아버지는 걸으러 나갔다. 늘 하던 대로였다. 나는 그때 삼백 살이었다.

아버지는 돌아오지 않았다.

우리는 찾았다. 언덕을 뒤지고, 골짜기를 내려가고, 아버지가 자주 걷던 길을 몇 번이고 다시 걸었다. 아무것도 없었다. 쓰러진 흔적도, 짐승에게 당한 흔적도. 아버지는 그냥 없었다.

그분과 함께 걷다가, 그분이 데려가셨다.

달리 설명할 말이 없었다. 우리 모두 그렇게 알았다. 다른 사람들 이름 끝에는 "그리고 죽었다"가 붙었다. 아버지 이름 끝에는 그 말이 붙지 않는다. 아버지는 하나님과 함께 걸었고, 하나님이 데려가셔서 세상에 없게 되었다.

북소리가 처음으로 멈췄다. 한 번.

할아버지 야렛은 아들을 잃은 사람 같지 않았다. 오히려 무언가를 부러워하는 얼굴이었다.

할아버지는 그 뒤로 사백 년 넘게 더 살았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처럼 죽었다.

해설 신약 히브리서는 에녹이 "믿음으로" 죽음을 보지 않고 옮겨졌으며, 옮겨지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사람이라는 인정을 받았다고 말한다(히 11:5). 성경에서 죽지 않고 하늘로 간 사람은 에녹과 엘리야 둘뿐이다.


나는 백여든일곱 살에 아들 라멕을 낳았다. 가인의 자손 가운데도 라멕이 있었지만, 내 아들은 그 사람과 다르다. 같은 이름을 가진 두 사람이 서로 다른 길을 걸었다.

라멕은 백여든두 살에 아들을 낳았다. 아이를 품에 안고 라멕이 말했다.

"여호와께서 땅을 저주하셔서 우리가 이렇게 손이 닳도록 고생하는데, 이 아이가 우리를 위로해 줄 것이다."

그래서 이름을 노아라고 했다. "쉼, 위로"와 소리가 닮은 이름이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아담을 생각했다. 땅이 너 때문에 저주를 받았다는 말씀. 그 말씀을 처음 들은 사람이 아담이었다. 그 뒤로 천 년 넘게, 우리는 모두 그 땅에서 땀을 흘렸다. 그런데 라멕은 이 아이가 그 고생에 쉼을 줄 거라고 했다. 그 쉼이 어떤 모양으로 올지는 아직 아무도 보지 못한 채로, 그는 그렇게 믿었다.

아이는 작았다. 주먹을 꼭 쥐고 있었다. 나는 아담의 손이 생각났다. 그 큰 손. 땅을 간 손. 이 작은 주먹도 언젠가 커져서 무언가를 붙잡을 것이다. 그게 무엇일지 나는 알고 싶었다.


라멕은 노아를 낳은 뒤 오백구십오 년을 더 살며 아들딸을 낳았고, 칠백칠십칠 살에 죽었다. 내 아들이 나보다 먼저 갔다. 오래 사는 것이 복만은 아니라는 걸, 나는 그때 알았다.

노아가 어렸을 때 나는 그 아이를 데리고 자주 언덕에 올랐다. 아버지가 앉던 바위에 함께 앉았다. 노아는 질문이 많은 아이였다. 증조할아버지는 어디로 가셨느냐고, 하나님과 함께 걷는다는 게 무슨 뜻이냐고. 나는 아버지가 이 바위에 앉아 별이 돋도록 기다리던 이야기를 해 주었다. 노아는 그 말을 듣고 한참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해가 질 때까지 바위에서 내려오지 않았다. 나는 그 아이를 재촉하지 않았다.

노아는 오백 살이 넘어 셈과 함과 야벳을 낳았다.

해설 성경의 숫자를 더해 보면 므두셀라는 홍수가 난 바로 그해에 죽었다. 그의 이름을 "그가 죽으면 보내리라"로 풀어 홍수를 미리 알린 이름으로 보는 풀이도 있지만 확실하지는 않다. 성경에서 가장 오래 산 사람의 생애 동안 하나님은 심판을 미루고 기다리셨다는 점은 분명하다(벧후 3:9 참고).

나도 이제 구백 살을 넘겼다. 아담을 보았고, 아버지가 사라지는 것을 보았고, 아들을 묻었다. 손자 노아의 세 아들도 다 자라 저마다 아내를 얻었다. 그런데 노아는 요즘 들어 말이 적다. 저녁이면 혼자 밖에 나가 오래 서 있다. 무언가를 듣는 사람처럼.

나는 그 모습을 안다. 아버지가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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