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권 창조와 족장 · 창세기 4장
제4장 가인과 아벨
아담과 하와가 에덴 동산에서 쫓겨난 뒤의 이야기다. 두 사람은 동산 동쪽 바깥 땅에서 가시덤불과 씨름하며 살았고, 거기서 첫 아이들이 태어났다. 맏아들은 가인, 둘째는 아벨이다. 가인이라는 이름은 "얻었다"는 말과 소리가 닮았고, 아벨은 "숨, 입김"이라는 뜻이다. 금방 사라지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 장은 맏아들 가인이 들려주는 이야기다. 땅을 갈던 사람, 그리고 세상에서 처음으로 사람을 죽인 사람이다.
이 장의 사람들: 가인(화자, 아담의 맏아들, 땅을 가는 사람), 아벨(가인의 동생, 양 치는 사람), 아담과 하와(가인의 부모), 라멕(가인의 5대손, 아내 둘을 둠), 셋(아벨 대신 태어난 아담의 아들)
어머니는 나를 낳고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여호와께서 도와주셔서 내가 아들을 얻었다."
동산 밖에서 태어난 첫 사람이 나였다. 어머니는 나를 안고 오래 들여다보았다고 했다. 여자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짓밟는다는 그 약속. 어머니는 내가 그 아이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어릴 때 나는 그 눈빛을 자주 느꼈다. 무언가를 기대하는 눈빛.
나는 그 아이가 아니었다.
동생 아벨이 태어났다. 아벨은 양을 쳤고 나는 땅을 갈았다.
아버지가 하던 일을 내가 물려받았다.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이 나는 땅. 뽑고 돌아서면 다시 가시가 올라오는 땅. 나는 매일 그 땅과 싸웠다. 돌을 골라내고, 엉겅퀴를 뽑고, 씨를 뿌리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손바닥은 갈라졌고 손톱 밑은 늘 까맸다.
아벨은 양 떼를 몰고 풀 있는 데로 다니기만 하면 됐다. 볕 좋은 언덕에서 양들 사이에 누워 있기도 했다. 나는 밭 한가운데서 허리를 펴다가 그 모습을 보곤 했다. 쉬워 보였다. 아무것도 빼앗기지 않은 사람처럼 보였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부터였는지도 모른다.
세월이 지난 어느 날, 나는 땅에서 거둔 것을 가지고 여호와께 제물로 드렸다. 아벨도 드렸다. 양 떼에서 처음 태어난 새끼, 그리고 그 기름진 부분을.
여호와께서는 아벨과 그의 제물은 기쁘게 받으셨다. 그러나 나와 내 제물은 받지 않으셨다.
드린 사람은 안다. 아벨의 얼굴은 환했고 내 앞은 텅 비어 있었다. 둘 다 같은 하늘 아래 서 있었는데, 그분의 눈길은 한쪽에만 머물렀다.
나는 몹시 화가 났다. 얼굴이 굳어 버렸다. 숨길 수가 없었다. 나도 드렸다. 내 손으로 거둔 것을 드렸다. 저 녀석이 나보다 무엇을 더 했다는 말인가.
그런데 정말 몰랐을까. 나는 첫 열매를 고르지 않았다. 아벨은 맏배를 골랐고 가장 좋은 부분을 떼어 냈다. 나는 거둔 것 가운데 적당한 것을 들고 갔다. 드리기는 드렸다. 그것이면 되는 줄 알았다. 아니, 그것이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해설 왜 가인의 제물만 받지 않으셨는지 창세기는 자세히 말하지 않는다. 신약은 아벨이 "믿음으로" 더 나은 제사를 드렸고(히 11:4), 가인의 행위는 악했다고 말한다(요일 3:12). 곡식이냐 양이냐보다 드리는 사람의 믿음과 마음이 문제였다는 풀이가 많고, 피 있는 제사여야 했다고 보는 풀이도 있다. 이 소설은 가인이 첫 열매를 고르지 않았다는 쪽으로 그렸다.
그때 여호와께서 나에게 말씀하셨다. 아벨이 아니라 나에게.
왜 화를 내느냐? 왜 얼굴빛이 변했느냐? 네가 옳은 일을 하면 왜 얼굴을 들지 못하겠느냐? 그러나 옳은 일을 하지 않으면, 죄가 문 앞에 웅크리고 앉아 있다. 죄가 너를 차지하려고 한다. 그러나 너는 죄를 다스려야 한다.
문 앞에 웅크린 짐승. 나는 그 모습을 알았다. 밤에 양 우리 밖에서 기다리는 들짐승. 문이 열리기만 하면 뛰어드는 것.
그분은 나를 버리지 않으셨다. 죄는 아직 문 앞에 있었다. 들어오지 않았다. 지금이라도 옳은 일을 하면 고개를 들 수 있다고 하셨다. 그건 꾸중이 아니었다. 손을 내미신 것이었다.
나는 그 손을 잡지 않았다.
나는 아벨에게 말을 걸었다. 그리고 우리가 들에 나가 있을 때, 아무도 없는 곳에서, 나는 동생을 쳐서 죽였다.
생각보다 짧았다. 그게 가장 무서웠다. 사람의 목숨이 그렇게 짧은 순간에 끝날 수 있다는 것. 아벨은 땅에 쓰러졌고 다시 일어나지 않았다. 바람이 불었다. 멀리서 그의 양들이 울었다. 내가 매일 갈던 그 땅이 동생의 피를 빨아들이고 있었다.
여호와께서 나에게 물으셨다.
네 동생 아벨이 어디 있느냐?
아버지도 동산에서 그런 질문을 받았다고 했다. "네가 어디 있느냐?" 아버지는 숨어 있다가 대답했다. 나는 숨지도 않고 거짓말을 했다.
"모릅니다. 제가 동생을 지키는 사람입니까?"
말을 하면서도 알았다. 그분은 이미 아신다는 것을.
네가 무슨 짓을 했느냐? 네 동생의 피가 땅에서 나에게 부르짖고 있다. 이제 너는 저주를 받아 이 땅에서 쫓겨날 것이다. 땅이 입을 벌려 네 손에서 흘린 네 동생의 피를 받았기 때문이다. 네가 밭을 갈아도 땅은 더 이상 너에게 힘을 내주지 않을 것이다. 너는 땅 위를 떠돌며 헤매는 사람이 될 것이다.
해설 아벨의 피는 억울함을 갚아 달라고 부르짖었다. 신약 히브리서는 예수님의 피가 "아벨의 피보다 더 나은 것을 말한다"고 한다(히 12:24). 아벨의 피가 심판을 부른다면, 예수님의 피는 용서를 부른다.
땅. 내가 평생 매달려 온 것. 내 손으로 일군 모든 것. 그것이 이제 나에게 등을 돌린다고 하셨다.
나는 무너졌다.
"제가 받는 벌이 너무 무거워서 견딜 수가 없습니다. 오늘 주께서 저를 이 땅에서 쫓아내시니, 저는 다시는 주님의 얼굴을 뵙지 못할 것입니다. 저는 땅 위를 떠돌며 헤매게 될 것이고, 저를 만나는 사람마다 저를 죽이려 할 것입니다."
내가 두려워한 것은 동생의 죽음이 아니었다. 나의 죽음이었다. 지금 그 말을 다시 떠올리면 그게 부끄럽다.
그렇지 않다. 누구든지 가인을 죽이는 사람은 일곱 배로 벌을 받을 것이다.
그리고 여호와께서 나에게 표를 주셔서, 누가 나를 만나도 나를 죽이지 못하게 하셨다.
그 표를 지니고 사는 동안 나는 매일 알았다. 나는 동생을 죽였는데, 하나님은 나를 죽게 내버려 두지 않으셨다는 것을.
해설 성경은 그 표가 무엇이었는지 말하지 않는다. 몸에 새긴 표로 보는 풀이도 있고, 하나님이 가인에게 보여 주신 어떤 징표로 보는 풀이도 있다.
나는 여호와 앞을 떠나 에덴 동쪽, 놋 땅으로 가서 살았다. 놋은 "떠돎"이라는 말과 소리가 같다.
아내가 아이를 가져 아들을 낳았다. 아이 이름은 에녹이었다. 그리고 성을 쌓기 시작했다. 떠도는 사람이 성을 쌓았다. 돌을 하나씩 올리며 나는 생각했다. 벽이 높으면 아무도 나를 해치지 못할 것이다. 여기 머물면 더 이상 떠돌지 않아도 될 것이다. 나는 그 성에 아들의 이름을 붙였다. 에녹 성.
해설 가인의 아내는 누구였을까. 아담은 아들딸을 많이 낳았다(창 5:4). 그러니 가인의 아내는 누이나 조카였을 것이고, 가인이 두려워한 "만나는 사람"도 그 형제와 자손들이었을 것이다. 처음에는 가까운 친척끼리의 결혼이 금지되지 않았고, 훗날 모세의 율법에서 금지된다(레 18장).
그렇게 살았다. 내 자손은 불어났다. 에녹은 이랏을 낳았고, 이랏은 므후야엘을, 므후야엘은 므드사엘을, 므드사엘은 라멕을 낳았다.
라멕은 아내를 둘 얻었다. 아다와 씰라였다.
아다는 야발을 낳았다. 야발은 천막에 살면서 가축을 치는 사람들의 조상이 되었다. 그 동생 유발은 수금을 타고 피리를 부는 모든 사람의 조상이 되었다. 씰라는 두발가인을 낳았다. 그는 구리와 쇠로 온갖 날붙이를 만드는 사람이었다. 두발가인에게는 나아마라는 누이가 있었다.
내 자손들은 영리했다. 천막을 치고, 노래를 만들고, 쇠를 다루었다. 성 안에는 피리 소리와 망치 소리가 그치지 않았다. 나는 그 소리를 들으며 늙어 갔다. 땅은 여전히 나에게 아무것도 내주지 않았지만, 내 자손들은 땅 없이도 사는 법을 찾아냈다.
그런데 어느 날 라멕이 두 아내 앞에서 노래를 불렀다. 그 노래가 내 귀에도 들어왔다.
"아다와 씰라, 내 목소리를 들어라. 라멕의 아내들아, 내 말에 귀를 기울여라. 나에게 상처를 입힌 사람을 내가 죽였다. 나를 때린 젊은이를 내가 죽였다. 가인을 해친 자가 일곱 배로 벌을 받는다면, 라멕을 해친 자는 일흔일곱 배로 벌을 받을 것이다."
나는 그 노래를 듣고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하나님이 나를 지켜 주신다고 하신 그 말씀이, 내 자손의 입에서 자랑거리가 되어 있었다. 나는 동생을 죽이고 떨었다. 라멕은 사람을 죽이고 노래했다. 내가 연 문을 그들은 활짝 열어 놓고 그 앞에서 춤추고 있었다.
해설 라멕은 "일흔일곱 배"의 복수를 자랑했다. 훗날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형제의 죄를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용서하라고 하셨다(마 18:22). 복수의 셈이 용서의 셈으로 뒤집힌 것이다.
그 노래를 들으며 나는 오래전 일 하나를 떠올렸다. 내가 놋 땅에 와서 살던 어느 해, 멀리 아버지의 땅에서 들려온 소식이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다시 아들을 낳았다고 했다. 이름은 셋. "주셨다"는 뜻이다. 어머니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하나님이 가인이 죽인 아벨 대신 나에게 다른 자식을 주셨다."
가인이 죽인 아벨. 어머니의 입에서 내 이름은 그렇게 불렸다. 나를 얻었다고 기뻐하던 그 입에서.
세월이 흘러 셋도 아들을 낳아 이름을 에노스라고 했다. 그때부터 사람들이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기 시작했다고 했다.
나는 성벽 위에 올라가 서쪽을 바라보았다. 그쪽 어딘가에서 사람들이 그분의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 내 성에서는 피리 소리와 망치 소리가 났다. 그 이름을 부르는 소리는 나지 않았다.
약속은 내게서 끝나지 않았다. 그 줄기는 다른 아들에게로 넘어가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