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권 창조와 족장 · 창세기 1장

제1장 빛이 있으라

아주 처음, 아직 아무것도 없던 때의 이야기다. 하나님이 하늘과 땅을 지으시고, 엿새 동안 빛과 하늘과 바다와 땅, 해와 달과 별, 물고기와 새와 짐승을 차례로 만드셨다. 그리고 엿새째 되는 날 마지막으로 사람을 지으셨다. 그 첫 사람의 이름이 아담이다. 히브리 말로 "사람"이라는 뜻인데, "흙"이라는 말과 소리가 닮았다.

이 장은 그 첫 사람 아담이 들려주는 이야기다. 그는 세상이 만들어지는 것을 보지 못했다. 그가 눈을 떴을 때 세상은 이미 다 지어져 있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께 직접 들은 이야기로 그 엿새를 전한다.

이 장의 사람들: 아담(화자, 하나님이 흙으로 지으신 첫 사람), 하와(아담의 아내, 첫 여자)

내가 처음 기억하는 것은 하늘이다.

눈을 떴고, 하늘이 있었다. 높고 파랬다. 나는 누워 있었다. 내가 무엇인지, 여기가 어디인지 몰랐다. 가슴이 오르내리고 있었다. 숨을 쉬고 있었다. 그게 숨이라는 것도 몰랐다. 그냥 무언가가 내 안으로 들어왔다 나갔다 했고, 그때마다 몸이 조금씩 따뜻해졌다.

손가락을 움직여 보았다. 움직였다. 손바닥 아래로 흙이 느껴졌다. 부드럽고 서늘했다. 나는 손을 들어 눈앞에 대 보았다. 다섯 손가락이 햇빛을 가렸다. 그 사이로 빛이 새어 들어왔다. 그게 내가 본 두 번째 것이었다.

그 전의 일은 기억에 없다. 기억할 내가 아직 없었으니까. 하나님이 흙으로 나를 빚으시고 코에 생명의 숨을 불어넣으셨다는 건 나중에 들었다. 숨이 들어온 그 순간부터 내가 있었다.


저녁이 되면 바람이 선선해졌다. 그 무렵이면 하나님이 동산에 오셨다. 우리는 그 발소리를 알았다. 하와와 나는 하던 일을 멈추고 그쪽으로 걸어갔다.

그분과 함께 걷는 시간이 하루 중 가장 좋았다. 우리는 묻고 싶은 것이 많았다. 해는 왜 저쪽으로 지는지, 물고기는 왜 물 밖에서 못 사는지, 밤하늘의 작은 불빛들은 무엇인지. 하와가 어느 날 이렇게 물었다.

"우리가 오기 전에는 무엇이 있었어요?"

하나님은 처음부터 이야기해 주셨다. 그날 밤도, 그다음 날 밤도. 우리는 같은 이야기를 몇 번이고 다시 듣고 싶어 했다. 지금부터 하는 이야기는 그렇게 들은 것이다.


처음에, 하나님이 하늘과 땅을 지으셨다.

그때 땅은 아무 모양도 없었고 텅 비어 있었다. 깊은 물이 온 땅을 덮고 있었고, 그 위는 캄캄했다. 하나님의 영이 그 물 위를 감돌고 계셨다.

나는 그 장면을 떠올리려고 눈을 감아 보았다. 밤보다 더 깜깜한 어둠. 별도 달도 없는. 바닥을 알 수 없는 물. 아무 소리도 없는. 무서웠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위에 계셨다. 그러니까 무서울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하나님이 말씀하셨다.

빛이 생겨라.

그러자 빛이 생겼다.

"그냥 말씀만 하셨어요?" 하와가 물었다.

그렇다고 하셨다. 말씀하시면 그대로 되었다. 하나님은 그 빛을 보시고 좋다고 하셨다. 그리고 빛과 어둠을 나누셔서, 빛은 낮이라고 부르시고 어둠은 밤이라고 부르셨다.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었다. 그것이 첫째 날이었다.

해가 생기기도 전에 빛이 먼저 있었다는 것이 나는 오래도록 신기했다. 빛이 해에게서 오는 것이 아니었다. 해보다 먼저, 빛을 만드신 분이 계셨다.


둘째 날, 하나님이 말씀하셨다.

물 한가운데 넓은 공간이 생겨서, 물과 물이 위아래로 나뉘어라.

하나님은 그렇게 넓은 공간을 만드셔서 그 아래의 물과 그 위의 물을 나누셨다. 그대로 되었다. 하나님은 그 공간을 하늘이라고 부르셨다.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었다. 둘째 날이었다.

나는 그 말씀을 듣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내가 눈을 뜨자마자 본 그것. 그 높고 파란 것도 둘째 날에 지어진 것이었다.

셋째 날, 하나님이 말씀하셨다.

하늘 아래의 물은 한 곳으로 모이고, 마른 땅이 드러나라.

그대로 되었다. 하나님은 마른 땅을 땅이라고 부르시고, 모인 물을 바다라고 부르셨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다.

그날 하나님은 한 번 더 말씀하셨다.

땅은 풀과, 씨 맺는 채소와, 씨 있는 열매를 맺는 나무를 그 종류대로 내라.

그러자 땅에서 풀이 돋고, 씨 맺는 채소가 종류대로 나고, 씨 있는 열매를 맺는 나무가 종류대로 났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다.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었다. 셋째 날이었다.

하와는 그 대목을 좋아했다. 그녀는 무화과 하나를 손바닥에 올려놓고 반으로 갈라 보곤 했다. 안에 작은 씨가 가득 들어 있었다. "이 안에 나무가 또 들어 있는 거예요." 그녀가 말했다. 처음 나무 하나에 다음 나무가, 그 나무에 또 다음 나무가. 하나님은 처음부터 끝없이 이어지게 만드셨다.


넷째 날, 하나님이 말씀하셨다.

하늘에 빛을 내는 것들이 생겨서 낮과 밤을 나누어라. 그것들은 표시가 되어 계절과 날과 해를 알려 주어라. 하늘에서 땅을 비추어라.

그대로 되었다. 하나님은 큰 빛 둘을 만드셨다. 큰 것은 낮을 다스리게 하시고, 작은 것은 밤을 다스리게 하셨다. 그리고 별들도 만드셨다. 그것들을 하늘에 두셔서 땅을 비추게 하시고, 낮과 밤을 다스리게 하시고, 빛과 어둠을 나누게 하셨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다.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었다. 넷째 날이었다.

그 이야기를 들은 밤, 나는 오래 잠들지 못했다. 누워서 별을 보았다. 셀 수가 없었다. 세다가 포기했다. 저 많은 것을 하나님은 한마디 말씀으로 만드셨다. 그런데 이야기 속에서 별은 단 한 줄이었다. "또 별들도 만드셨다." 그게 다였다. 나에게는 하늘을 다 덮는 것이 그분께는 한 줄이었다.

다섯째 날, 하나님이 말씀하셨다.

물에는 살아 움직이는 것들이 가득해라. 땅 위 하늘에는 새들이 날아라.

하나님은 바다의 큰 짐승들과 물속에서 움직이는 온갖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날개 달린 온갖 새를 그 종류대로 지으셨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말씀하셨다.

많이 낳고 불어나서 바다를 가득 채워라. 새들도 땅 위에 많이 불어나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었다. 다섯째 날이었다.

나는 강가에 앉아 물고기 떼가 한꺼번에 방향을 바꾸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수백 마리가 하나처럼 움직였다. 머리 위로는 새들이 지나갔다. 그 모든 것이 처음 복을 받은 생명들이었다. 하나님이 처음으로 "복"이라는 말을 하신 것이 그날이었다.


여섯째 날, 하나님이 말씀하셨다.

땅은 살아 있는 것들을 그 종류대로 내라. 가축과, 기어 다니는 것과, 들짐승을 그 종류대로 내라.

그대로 되었다. 하나님은 들짐승과 가축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그 종류대로 만드셨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다.

여기까지 이야기하셨을 때 하나님은 잠시 말을 멈추셨다. 하와와 나는 그분을 바라보았다. 이다음이 우리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날 하신 말씀을 그대로 들려주셨다. 그 말씀은 다른 것들을 만드실 때와 달랐다. "생겨라"가 아니었다. "내라"도 아니었다.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습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자. 그리고 그들이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우리." 나는 그 말이 오래 마음에 걸렸다. 하나님은 한 분이신데, 사람을 지으실 때만은 서로 의논하시듯 말씀하셨다.

해설 하나님은 한 분이시지만 성부·성자·성령 세 분으로 계신다. 그래서 "우리"라고 하신 것이다. 이 장 처음에 물 위를 움직이던 "하나님의 영"이 성령이시고, 요한복음 1장은 예수님(말씀)이 태초부터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며 모든 것이 그분을 통해 지어졌다고 말한다. "형상"은 닮은 모습이라는 뜻이다. 얼굴이 닮았다는 게 아니라, 생각하고 사랑하고 선택하고 다스릴 줄 아는 존재로 지으셨다는 뜻이다.

하나님은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지으셨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셨다. 남자와 여자로 지으셨다.

하와가 내 손을 잡았다. 남자와 여자. 이야기 속에 처음부터 그녀가 있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말씀하셨다.

자식을 많이 낳고 불어나서 땅을 가득 채워라. 땅을 정복해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 위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려라.

해설 "정복해라", "다스려라"는 마음대로 써 버리라는 뜻이 아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사람에게 그분을 대신해 세상을 돌보고 가꾸라고 맡기신 것이다. 2장에서 아담이 동산을 "일구고 지키는" 일을 받는 것이 그 모습이다.

그리고 또 말씀하셨다.

보아라. 내가 온 땅에서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있는 열매를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준다. 그것이 너희의 먹을거리가 될 것이다. 그리고 땅의 모든 짐승과 하늘의 모든 새와 땅에 기는 모든 생명 있는 것에게는 푸른 풀을 먹을거리로 준다.

그대로 되었다.

하나님은 지으신 모든 것을 보셨다. 빛과 하늘과 바다와 땅, 풀과 나무, 해와 달과 별, 물고기와 새, 짐승들, 그리고 우리. 보시기에 아주 좋았다.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었다. 여섯째 날이었다.


다른 날들은 모두 "좋았다"였다. 그날만 "아주 좋았다"였다. 하와는 그 차이를 알아들었고, 나도 알아들었다.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할 말이 없었다.

그날 밤 돌아오는 길에 하와가 물었다. "그다음 날은요? 일곱째 날에는 무엇을 만드셨어요?"

나는 웃었다. 그날은 하와도 안다. 우리 둘이 함께 맞은 첫 번째 온전한 하루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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