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권 창조와 족장 · 창세기 46-50장

제30장 애굽으로, 그리고 축복

애굽(이집트)과 가나안 사이, 시나이 반도를 가로지르는 먼 길. 애굽의 총리가 된 요셉이 형들에게 자기 정체를 밝혔고, 형들은 가나안으로 돌아가 늙은 아버지 야곱에게 요셉이 살아 있다고 알렸다. 흉년은 아직 다섯 해가 남았다. 요셉은 아버지와 온 식구를 애굽의 고센 땅으로 모셔 오려 한다. 고센은 나일 강 하류 동쪽의 풀이 많은 땅으로, 가축을 치기에 좋은 곳이다.

이 장은 요셉이 들려주는 이야기다. 야곱의 열한째 아들이며 애굽의 총리, 이때 서른아홉 살이다. 이 장으로 창세기가 끝난다.

이 장의 사람들: 요셉(화자, 애굽 총리, 야곱의 열한째 아들), 야곱(요셉의 아버지, 이스라엘, 백삼십 세), 유다(넷째 형, 길잡이로 먼저 옴), 바로(애굽 왕), 므낫세와 에브라임(요셉의 두 아들), 르우벤, 시므온, 레위(야곱의 위 세 아들), 베냐민(요셉의 친동생)

아버지가 오신다는 소식이 먼저 왔다.

유다 형이 앞서 와서 고센으로 가는 길을 물었다. 나는 수레를 준비시켰다. 말을 재촉하면서도 손에 쥔 고삐가 자꾸 미끄러졌다. 이십이 년이었다. 열일곱의 나를 기억하는 분이, 서른아홉의 나를 알아보실까.

아버지가 브엘세바에서 겪으신 일은 나중에 들었다. 모든 것을 이끌고 길을 나서 브엘세바에 이르렀을 때, 아버지는 할아버지 이삭의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다. 그날 밤 하나님이 환상 가운데 부르셨다. "야곱아, 야곱아." 아버지가 대답했다. "제가 여기 있습니다."

나는 하나님, 네 아버지의 하나님이다. 애굽으로 내려가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라. 내가 거기서 너를 큰 민족이 되게 하겠다. 내가 너와 함께 애굽으로 내려가겠고, 반드시 너를 다시 이끌고 올라오겠다. 요셉이 제 손으로 네 눈을 감겨 줄 것이다.

아버지는 두려우셨던 것이다. 약속의 땅을 등지고 남의 나라로 내려가는 것이. 하나님은 그 두려움을 아시고 먼저 말씀하셨다. 함께 가겠다고. 다시 데리고 오겠다고. 오래전 증조할아버지 아브라함에게, 그 자손이 남의 나라에서 나그네로 살다가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올 것이라 하신 말씀이 이렇게 시작되고 있었다.

아버지는 바로가 보낸 수레에 올랐다. 아들들, 손자들, 딸들, 손녀들, 가축과 가나안에서 모은 재산이 함께 왔다. 애굽에 들어온 야곱의 집 사람은 나와 내 두 아들까지 모두 일흔 명이었다. 형수들은 빼고 센 숫자다. 족보표 6


고센에서 아버지를 보았다.

수레에서 내리는 노인은 내 기억보다 훨씬 작았다. 나는 달려가 아버지 목을 끌어안았다. 그리고 한참을 울었다. 무슨 말을 하려 했는지 다 잊었다.

"이제 죽어도 좋다. 네가 살아 있는 것을 보았고, 네 얼굴을 보았으니."

나는 형들에게 미리 일러두었다. 바로가 생업을 묻거든,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조상 대대로 가축을 쳐 온 목자라고 대답하라고. 애굽 사람들은 목자를 꺼린다. 그래서 오히려 고센 땅에 따로 살게 될 것이다.

나는 형들 가운데 다섯을 데리고 바로에게 갔다. 형들은 일러둔 대로 말했다. 가나안에 흉년이 심해 가축 먹일 풀이 없으니 고센에 머물게 해 달라고. 바로가 나에게 말했다. "애굽 땅이 네 앞에 있다. 가장 좋은 땅, 고센에 살게 해라. 그들 가운데 능력 있는 사람이 있으면 내 가축을 맡겨라."

그다음 아버지를 바로 앞에 모셨다. 아버지가 바로를 축복했다. 세상에서 가장 큰 나라의 왕이, 지팡이를 짚은 나그네에게 복을 받았다.

바로가 아버지에게 물었다. "연세가 어떻게 되시오?"

"제 나그네 인생이 백삼십 년입니다. 얼마 되지 않는 세월인데 험하게 살았습니다. 제 조상들의 나그네 길에는 미치지 못합니다."

아버지는 바로를 다시 축복하고 물러났다. 나는 바로의 명대로 가족에게 라암세스 땅, 애굽의 좋은 땅을 주고 식구 수대로 양식을 대었다.


흉년은 더 깊어졌다. 애굽과 가나안이 모두 지쳐 쓰러졌다.

나는 곡식을 팔아 두 땅의 돈을 다 거두어 바로의 궁에 들였다. 돈이 떨어지자 사람들이 와서 말했다. "주인님 앞에서 죽게 생겼습니다. 먹을 것을 주십시오." 나는 가축을 받고 곡식을 주었다. 말, 양, 소, 나귀. 그 한 해를 그렇게 버텼다.

이듬해 그들이 다시 왔다. "숨기지 않겠습니다. 돈도 가축도 다 드렸습니다. 남은 건 우리 몸과 밭뿐입니다. 우리와 밭을 사 주십시오. 우리가 바로의 종이 되겠습니다. 씨앗만 주시면 살겠고, 밭도 버려지지 않을 겁니다."

나는 애굽의 밭을 모두 사서 바로의 것으로 만들었다. 사람들을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성읍으로 옮겼다. 제사장들의 밭만은 사지 않았다. 그들은 바로에게서 녹을 받아 먹고 살았기 때문이다. 나는 씨앗을 나눠 주며 말했다. "거둔 것의 오분의 일은 바로께 바쳐라. 나머지 넷은 씨앗과 너희 식구의 양식으로 써라." 그들이 대답했다. "주인님이 우리 목숨을 살리셨습니다. 바로의 종이 되겠습니다." 그 오분의 일 법은 지금까지 애굽에 남아 있다.

그사이 우리 집안은 고센에서 땅을 얻고, 자식을 낳고, 크게 불어났다.


아버지는 애굽에서 열일곱 해를 사셨다. 백사십칠 세에 죽을 날이 가까워지자 나를 부르셨다.

"네 손을 내 허벅지 아래 넣고, 나를 애굽에 묻지 않겠다고 맹세해라. 내가 조상들과 함께 눕거든 나를 메고 나가 조상들 묘에 묻어 다오."

"아버지 말씀대로 하겠습니다."

"맹세해라."

나는 맹세했다. 아버지는 침상 머리에서 하나님께 엎드려 경배하셨다.

해설 허벅지 아래 손을 넣는 것은 생명과 자손이 나오는 자리에 손을 대고 하는 맹세로, 아주 무겁고 깨뜨릴 수 없는 약속을 뜻했다. 아브라함도 종에게 이렇게 맹세하게 했다(창 24장). 야곱이 애굽의 좋은 땅이 아니라 가나안의 조상 묘에 묻히기를 고집한 것은, 하나님이 그 땅을 자손에게 주시겠다는 약속을 끝까지 믿었기 때문이다.

얼마 뒤 아버지가 병드셨다는 전갈이 왔다. 나는 므낫세와 에브라임을 데리고 갔다. 아버지는 힘을 모아 침상에 일어나 앉으셨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가나안 땅 루스에서 내게 나타나 복을 주셨다. 너를 번성하게 해서 많은 백성이 나오게 하고,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영원히 주겠다고 하셨다. 네가 애굽에서 낳은 이 두 아들은 이제 내 아들이다. 르우벤과 시므온처럼 내 것이다. 그 뒤에 낳는 자식은 네 자식이고, 형들 이름 아래서 몫을 받을 것이다."

그리고 갑자기 어머니 이야기를 하셨다. "밧단에서 올 때 라헬이 길에서 죽었다. 에브랏, 곧 베들레헴 가는 길에 내가 그를 묻었다." 그 말을 하는 아버지 목소리가 오래 떨렸다.

아버지의 눈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이 아이들은 누구냐." "하나님이 여기서 제게 주신 아들들입니다." 아버지는 아이들을 안고 입을 맞추었다. "네 얼굴을 다시 볼 줄은 생각도 못 했는데, 하나님이 네 자식들까지 보게 하셨구나."

나는 맏아들 므낫세를 아버지의 오른손 쪽에, 에브라임을 왼손 쪽에 세웠다. 그런데 아버지가 두 팔을 엇갈려 오른손을 동생 에브라임의 머리에 얹으셨다.

"내 할아버지 아브라함과 아버지 이삭이 섬기던 하나님, 내가 태어난 날부터 오늘까지 나를 먹이신 하나님, 나를 모든 재앙에서 건지신 천사께서 이 아이들에게 복을 주시기를. 내 이름과 내 조상들의 이름이 이 아이들로 이어지고, 세상에서 크게 불어나기를."

나는 기분이 상해 아버지 손을 옮기려 했다. "아버지, 그쪽이 아닙니다. 이 아이가 맏아들입니다."

"안다, 내 아들아. 나도 안다. 형도 크게 될 것이다. 그러나 동생이 더 크게 되고, 그 자손이 여러 민족을 이룰 것이다."

해설 형보다 동생을 앞세우는 일은 창세기 내내 되풀이된다. 이스마엘보다 이삭, 에서보다 야곱, 므낫세보다 에브라임. 하나님의 복은 태어난 순서나 사람의 자격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운 선택으로 주어진다는 것을 보여 준다. 야곱이 "나를 건지신 천사"라고 부른 분은, 브니엘에서 그와 씨름하신 여호와의 사자로 풀이된다.

그날 아버지는 두 아이를 축복하며 말씀하셨다. "앞으로 이스라엘 사람들은 서로 복을 빌 때 너희 이름을 부를 것이다. 하나님이 너를 에브라임 같고 므낫세 같게 하시기를." 이렇게 아버지는 에브라임을 므낫세 앞에 세우셨다. 그리고 내게 말씀하셨다. "나는 죽지만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하셔서 너희를 조상의 땅으로 돌려보내실 것이다. 내가 칼과 활로 아모리 사람에게서 빼앗은 땅 한 몫을 너에게 형들보다 더 준다."


아버지가 아들들을 다 부르셨다. "모여라. 앞날에 너희가 겪을 일을 말해 주겠다."

르우벤 형에게는 맏아들이지만 끓는 물처럼 들떠 아버지 침상을 더럽혔으니 으뜸이 되지 못한다고 하셨다. 시므온과 레위 형에게는 분노로 사람을 죽였으니 그 칼을 저주하고, 이스라엘 가운데 흩어 버리겠다고 하셨다.

그리고 유다 형.

"유다야, 형제들이 너를 찬양할 것이다. 네 손이 원수의 목을 잡고, 네 아버지의 아들들이 네 앞에 절할 것이다. 유다는 사자 새끼다. 웅크린 수사자, 암사자 같으니 누가 감히 건드리겠느냐."

왕의 홀이 유다를 떠나지 않고, 다스리는 지팡이가 그 발 사이에서 떠나지 않을 것이다. 실로가 오실 때까지. 모든 백성이 그분께 순종할 것이다.

나귀를 포도나무에 맬 만큼, 옷을 포도주에 빨 만큼 풍성할 것이라는 말이 이어졌다. 동생을 팔자고 했던 형, 베냐민 대신 종이 되겠다고 했던 형. 왕의 홀은 그에게 갔다.

해설 "실로"는 "그것을 가진 분"이라는 뜻으로 풀이되어 왔다. 신약 요한계시록은 예수님을 "유다 지파의 사자"라고 부른다. 유다에게서 다윗 왕이 나오고, 다윗의 자손으로 예수님이 오셨다.

스불론은 바닷가에 살아 배를 대는 곳이 되고, 잇사갈은 쉴 곳을 좋게 여겨 어깨에 짐을 지는 튼튼한 나귀라 하셨다. 단은 백성을 다스리되 길가의 독사처럼 말 발굽을 물 것이라 하셨다. 그리고 숨을 고르고 말씀하셨다. "여호와여, 주님의 구원을 기다립니다." 갓은 습격을 받아도 도리어 뒤쫓고, 아셀은 왕의 음식을 낼 기름진 땅을 얻고, 납달리는 풀려난 암사슴처럼 아름다운 말을 낼 것이라 하셨다.

내 차례였다. "요셉은 샘 곁의 열매 많은 가지, 그 가지가 담을 넘는다. 활 쏘는 자들이 그를 괴롭히고 쏘아도, 그의 활은 굳세고 팔은 힘이 있다. 야곱의 전능하신 분이 도우셨다. 하늘의 복, 깊은 샘의 복, 젖과 태의 복이 요셉의 머리 위에 있을 것이다." 베냐민은 아침에 움킨 것을 먹고 저녁에 나누는 이리라 하셨다.

이렇게 열두 지파가 각자 몫의 축복을 받았다. 아버지는 마지막으로 당부하셨다. 마므레 앞 막벨라 밭의 굴, 아브라함과 사라, 이삭과 리브가가 묻힌 곳, 아버지가 레아 어머니를 묻은 곳에 묻어 달라고. 그리고 침상에 발을 거두고 숨을 거두셨다.


나는 아버지 얼굴에 엎드려 울며 입을 맞추었다. 의사들이 사십 일 동안 몸에 향을 넣었고, 애굽 사람들은 칠십 일 동안 울었다. 바로의 허락을 받아 나는 아버지를 모시고 올라갔다. 바로의 신하들, 애굽의 원로들, 형들과 온 집안, 병거와 기병까지 큰 행렬이었다. 아이들과 가축만 고센에 남았다. 요단 강 건너 아닷의 타작마당에서 칠 일 동안 크게 울었다. 그것을 본 가나안 사람들이 그곳을 아벨미스라임, "애굽 사람의 애곡"이라 불렀다. 우리는 아버지를 막벨라 굴에 묻고 돌아왔다.

돌아오자 형들이 사람을 보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요셉에게 형들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전하라 하셨다는 것이다. 그 말을 듣고 나는 울었다. 형들이 와서 엎드렸다. "우리는 당신의 종입니다."

"두려워하지 마세요.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겠습니까? 형님들은 나를 해치려 했지만,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셔서 오늘처럼 많은 사람의 목숨을 살리셨습니다. 두려워하지 마세요. 내가 형님들과 형님들 자식들을 돌보겠습니다."

해설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겠습니까"는 벌을 주고 갚는 일은 하나님께 맡긴다는 뜻이다. 요셉은 형들의 죄를 덮어 두지 않으면서도 하나님이 그 악을 선으로 바꾸셨다고 고백하며 용서한다. 신약은 이 믿음을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롬 8:28)는 말씀으로 이어 간다.

나는 백십 년을 살았다. 에브라임의 자손 삼 대를 보았고, 므낫세의 손자, 마길의 아들들을 무릎에 안았다. 죽기 전 형제들에게 말했다.

"나는 죽지만 하나님이 반드시 너희를 찾아오셔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신 땅으로 이끌고 올라가실 것이다. 그때 내 뼈를 메고 올라가겠다고 맹세해 다오."

그들이 맹세했다. 내 몸은 향으로 싸여 애굽의 관에 눕혀질 것이다. 그러나 오래 머물지는 않을 것이다.

해설 히브리서 11장은 요셉이 죽을 때 자기 뼈에 대해 당부한 것을 믿음의 행동으로 꼽는다. 약 사백 년 뒤 모세가 이스라엘을 이끌고 애굽을 나올 때 요셉의 뼈를 가지고 나왔고(출 13:19), 여호수아 때 세겜 땅에 묻었다(수 24:32). 창세기는 이렇게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약속을 바라보며 끝난다.

목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