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권 창조와 족장 · 창세기 3장

제3장 뱀

에덴 동산. 하나님이 첫 사람 아담을 흙으로 지으시고, 그의 갈빗대로 여자를 만들어 짝으로 주신 뒤의 일이다. 두 사람은 아무 부족함 없이 동산에서 살았다. 하나님은 온 동산의 열매를 다 허락하시고 단 하나, 동산 한가운데 있는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만은 먹지 말라고 하셨다. 먹으면 반드시 죽는다고.

이 장은 그 여자, 하와가 들려주는 이야기다.

이 장의 사람들: 하와(화자, 아담의 아내), 아담(첫 사람, 하와의 남편), 뱀(들짐승 가운데 가장 간교한 것)

나는 그 나무 앞에 서 있었다.

동산은 넓었고 어디로 가든 먹을 것이 있었다. 그 나무 하나만 빼면 전부 우리 것이었다. 그러니 거기 갈 이유가 없었다. 그런데 그날 나는 동산 한가운데, 그 나무 그늘까지 들어가 있었다.

열매는 다른 나무의 것과 별로 다르지 않았다. 그게 이상했다. 먹으면 죽는 열매라면 뭔가 달라야 하지 않나. 시커멓거나, 가시가 돋쳤거나. 그런데 그냥 열매였다.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아주 평범한 열매.

"하나님이 정말 너희한테 동산의 어떤 나무 열매도 먹지 말라고 하셨어?"

목소리가 어디서 나는지 처음엔 몰랐다. 나무 아래에 뱀이 있었다. 하나님이 만드신 들짐승 가운데 가장 영리하고 교활한 짐승. 아담이 이름을 지어 준 짐승들 가운데 하나였다. 내가 처음 동산에 온 날, 아담이 하나하나 가리키며 이름을 불러 줄 때도 저렇게 말을 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그 말은 틀렸다. 어떤 나무도 먹지 말라니. 하나님은 그렇게 말씀하신 적이 없다. 나는 바로잡아 주고 싶었다. 그래서 대답했다.

"아니야. 동산 나무 열매는 우리가 먹을 수 있어. 하지만 동산 한가운데 있는 저 나무 열매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고 하셨어. 그러면 죽는다고."

말을 하고 나니 조금 이상했다. 만지지도 말라. 하나님이 그렇게까지 말씀하셨던가. 아담이 전해 준 말은 먹지 말라는 것뿐이었다. 그런데 내 입에서는 "만지지도"가 튀어나왔다. 그 나무를 생각할 때마다 금지가 조금씩 무거워졌던 것 같다. 하나님이 아니라, 내가 그렇게 만들고 있었다.

뱀은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절대 안 죽어. 그걸 먹는 날 너희 눈이 열려서 하나님처럼 선과 악을 알게 될 거야. 하나님은 그걸 아시니까 먹지 말라고 하신 거고."

그 말이 마음에 들어왔다. 열매가 아니라 그 말이. 하나님이 뭔가를 숨기고 계신다는 것. 우리한테 주기 싫은 좋은 것이 있다는 것. 나는 한 번도 하나님을 그렇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저녁마다 동산에 오셔서 우리와 함께 걸으시는 분이었다. 그런데 뱀의 말을 듣고 나니 그분이 뭔가 감추고 계신 것처럼 보였다. 한번 그렇게 보이기 시작하니 다르게 볼 수가 없었다.

나는 다시 나무를 올려다보았다.

어제와 같은 나무였다. 그런데 달라 보였다. 먹음직스러웠다. 보기에도 탐스러웠다. 그리고 저걸 먹으면 지혜로워질 것 같았다. 그 세 가지가 한꺼번에 밀려왔다.

손을 뻗는 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 따서, 먹었다. 달았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죽지 않았다.

아담이 옆에 있었다. 처음부터 거기 있었다. 뱀이 말할 때도, 내가 대답할 때도, 내가 손을 뻗을 때도.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내가 열매를 건네자 그는 받아서 먹었다. 말리지도, 묻지도 않았다.


뱀의 말은 반은 맞았다. 우리 눈이 열렸다.

그런데 보인 것은 하나님 같은 영광이 아니었다. 내 몸이었다. 아담의 몸이었다. 어제까지 아무렇지도 않던 것이 갑자기 가려야 할 것이 되었다. 아담이 나를 보는 눈빛이 달라졌고, 나도 그를 똑바로 볼 수가 없었다. 우리는 무화과나무 잎을 뜯어 엮어서 몸을 가렸다. 손이 떨렸다. 태어나 처음으로, 서로에게서 뭔가를 감추었다.

그리고 저녁이 왔다.

바람이 선선해지면 하나님이 동산에 오셨다. 늘 그랬다. 그 발소리가 들리면 우리는 달려 나갔다. 그런데 그날은 그 소리가 무서웠다. 우리는 나무들 사이로 숨어 들어갔다. 하나님이 못 찾으시게. 말이 안 되는 생각이라는 건 알았다. 그래도 숨었다.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셨다.

네가 어디 있느냐?

모르셔서 물으신 게 아니라는 건 나도 알았다. 그건 나오라는 부르심이었다. 스스로 걸어 나오라는.

아담이 나무 뒤에서 대답했다.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들었는데, 제가 벗은 몸이라 두려워서 숨었습니다."

네가 벗었다고 누가 너에게 알려 주었느냐? 내가 먹지 말라고 한 그 나무 열매를 네가 먹었느냐?

아담은 "네"라고 하지 않았다. 대신 손가락이 움직였다. 나를 향해.

"하나님이 저와 함께 살라고 주신 저 여자가 그 열매를 줘서 먹었습니다."

내 뼈 중의 뼈라고 했던 사람이었다. 그가 나를 가리켰다. 그리고 나를 주신 하나님까지 탓했다.

하나님이 나를 보셨다.

네가 어찌하여 이런 일을 했느냐?

나도 똑같이 했다. 내 손가락도 움직였다.

"뱀이 저를 속여서 먹었습니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뱀은 나를 속였지만, 손을 뻗은 건 나였다. 나는 그 말을 하지 않았다. 아담은 나를, 나는 뱀을 가리켰다. 열매를 먹은 지 반나절도 안 됐는데 우리는 벌써 남 탓하는 법을 알고 있었다.


하나님은 뱀에게는 아무것도 묻지 않으셨다. 우리에게는 물으셨는데, 뱀에게는 변명할 기회도 주지 않으셨다. 곧바로 말씀하셨다.

네가 이런 일을 저질렀으니, 너는 모든 가축과 들짐승 가운데 가장 큰 저주를 받을 것이다. 너는 평생 배로 기어 다니고, 흙을 먹으며 살 것이다.

그리고 이어진 말씀은 분명 뱀에게 하신 것이었다. 그런데 내게는 그 말씀이 나를 향한 것처럼 들렸다.

내가 너와 여자를 서로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과 여자의 후손 역시 원수가 되게 하겠다. 여자의 후손은 너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고, 너는 그의 발뒤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다.

여자의 후손. 나의 후손. 언젠가 내게서 난 누군가가 뱀의 머리를 짓밟는다. 뱀은 그의 발뒤꿈치를 물겠지만, 그는 뱀의 머리를 부순다. 저주가 쏟아지는 한가운데서 하나님은 약속을 하고 계셨다. 다른 건 몰라도, 나는 그 말씀만은 놓치지 않았다.

해설 이 말씀이 성경의 첫 번째 예언이다. 성경 마지막 책은 이 뱀을 "마귀, 사탄"이라고 밝힌다. 그리고 "여자의 후손"으로 온 분이 예수님이다. 십자가에서 상처를 입으셨지만(발뒤꿈치), 부활로 사탄을 이기셨다(머리).

그다음 하나님은 나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너에게 아이를 가지는 고통을 크게 더하겠다. 너는 고통 속에서 아이를 낳을 것이다. 너는 남편을 원하겠지만,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다.

그리고 아담에게.

네가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먹지 말라고 한 나무 열매를 먹었으니, 땅이 너 때문에 저주를 받을 것이다. 너는 평생 고생해야 땅에서 나는 것을 먹고 살 것이다. 땅은 너에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고, 너는 들판의 채소를 먹을 것이다. 너는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얻을 것이고, 결국 흙으로 돌아갈 것이다. 너는 흙에서 났으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다.

흙으로 돌아간다. 그게 죽음이었다. 그날 바로 숨이 끊어지는 게 아니라, 흙으로 돌아가는 길이 그날 시작된 것이었다. 뱀은 죽지 않는다고 했다. 뱀이 틀렸다.


말씀이 다 끝났을 때 아담이 처음 한 일은 이름을 짓는 것이었다. 그는 나를 하와라고 불렀다. "살아 있는 모든 사람의 어머니"라는 뜻이었다. 방금 죽음을 선고받은 사람이 나에게 생명이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다. 나는 그가 왜 그랬는지 안다. 그도 그 약속을 들은 것이다. 여자의 후손. 그는 그 말씀을 붙들고 있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가죽으로 옷을 지어 입혀 주셨다. 우리가 엮은 무화과 잎은 벌써 시들어 가고 있었다. 나는 그 가죽을 손으로 쓸어 보았다. 가죽옷이 생기려면 짐승 하나가 죽어야 한다. 우리의 부끄러움을 덮으려고 다른 생명이 대신 죽은 것이다. 죄가 덮이는 데에는 값이 든다는 것을, 나는 그날 처음 어렴풋이 알았다.

해설 창세기는 이 가죽옷을 제사라고 직접 부르지는 않는다. 다만 사람이 스스로 만든 무화과 잎이 아니라 하나님이 지어 주신 옷으로 부끄러움이 덮였다는 점, 그리고 짐승이 죽어야 그 옷이 생긴다는 점에서, 피 흘림이 없으면 죄 사함도 없다는 원리(히 9:22)와 하나님의 어린양이신 그리스도를 미리 보여 준다고 보는 풀이가 많다.

하나님이 말씀하셨다.

보라, 이제 이 사람이 우리 가운데 하나처럼 선과 악을 알게 되었다. 그가 손을 뻗어 생명나무 열매까지 따 먹고 영원히 살게 두어서는 안 되겠다.

생명나무. 그 나무도 동산 한가운데 있었다. 그건 금지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우리는 언제든 먹을 수 있었는데, 먹지 않았다. 그리고 이제는 먹을 수 없게 되었다. 죄를 품은 채로 영원히 사는 것이 어떤 것일지, 나는 그제야 조금 알 것 같았다. 그건 복이 아니었다.

하나님은 우리를 에덴 동산에서 내보내셨다. 아담이 처음 나온 그 흙을 갈며 살게 하셨다. 그리고 동산 동쪽 입구에 날개 달린 천사들을 세우시고, 사방으로 도는 불칼을 두어 생명나무로 가는 길을 지키게 하셨다.

해설 여기서도 하나님은 "우리"라고 하신다(1장 해설 참고). 생명나무로 가는 길을 막으신 것은 벌이면서 자비이기도 하다. 죄에 묶인 채 영원히 사는 것을 막으신 것이다. 길을 지킨 "날개 달린 천사들"은 그룹이라 불리는 천사들이고, 성경 마지막 책에서 이 생명나무는 구원받은 사람들 앞에 다시 나타난다(계 22:2).

우리는 동쪽으로 걸었다. 나는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돌아보면 한 걸음도 못 갈 것 같았다. 아담도 돌아보지 않았다. 등 뒤에서는 불칼이 도는 소리가 났고, 앞에는 처음 보는 땅이 펼쳐져 있었다. 가시덤불이 있을 거라고 하셨다.

그리고 내 마음 안에는, 그 약속 하나가 있었다. 여자의 후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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