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권 창조와 족장 · 창세기 38장

제26장 유다와 다말

가나안 땅, 지금의 이스라엘 남쪽 산지와 그 아래 낮은 들판. 야곱의 아들들이 동생 요셉을 노예로 팔아넘긴 뒤의 일이다. 그 무렵 넷째 아들 유다는 형제들 곁을 떠나 아둘람이라는 마을로 내려가 살았다. 거기서 가나안 여자와 결혼해 아들 셋을 낳았다. 그 시절에는 한 남자가 아들 없이 죽으면, 그 동생이 형수와 함께 살아 형의 이름을 이을 아들을 낳아 주는 관습이 있었다.

이 장은 다말이 들려주는 이야기다. 유다의 맏아들 엘의 아내, 곧 유다의 며느리다.

이 장의 사람들: 다말(화자, 유다의 맏며느리), 유다(야곱의 넷째 아들, 다말의 시아버지), 엘(유다의 맏아들, 다말의 첫 남편), 오난(유다의 둘째 아들), 셀라(유다의 막내아들), 히라(아둘람 사람, 유다의 친구), 베레스와 세라(다말이 낳은 쌍둥이)

나는 유다의 집에 신부로 들어갔다.

시아버지가 직접 나를 골랐다고 들었다. 맏아들 엘의 아내로. 유다는 아둘람 사람 히라와 가까이 지냈고, 수아라는 가나안 사람의 딸과 결혼해 아들 셋을 두었다. 엘, 오난, 셀라. 막내 셀라는 거십이라는 곳에 살 때 태어났다고 했다. 나는 그 집 맏며느리가 되었다. 언젠가 이 집의 대를 이을 아들을 내가 낳을 줄 알았다.

엘은 오래 살지 못했다.

그는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악한 사람이었다. 여호와께서 그를 죽이셨다. 나는 아이도 없이 과부가 되었다.

시아버지가 둘째 오난을 불렀다. 나도 그 자리에 있었다.

"네 형수에게 가서 시동생의 도리를 다해라. 네 형의 대를 이을 아이를 낳아 줘라."

오난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그는 알고 있었다. 그렇게 태어난 아이는 자기 아이가 아니라 죽은 형의 아이로 불린다는 것을. 그래서 그는 나에게 왔지만, 형의 이름으로 아이가 생기지 않도록 일부러 피했다. 한 번이 아니었다. 그는 형의 몫을 끊어 버리려 했고, 나는 그 사이에서 쓰고 버려지는 사람이었다.

그 일도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악했다. 여호와께서 오난도 죽이셨다.

해설 성경은 엘이 어떻게 악했는지는 말하지 않는다. 형이 아들 없이 죽으면 동생이 형수와 결혼해 형의 대를 이어 주는 것을 계대결혼(형사취수)이라고 한다. 훗날 모세의 율법에도 들어간 제도로(신 25:5-10), 남편 잃은 여자를 보호하고 죽은 사람의 이름과 땅을 지켜 주려는 것이었다. 오난은 그 책임은 피하면서 형수를 이용했고, 형의 몫까지 차지하려 했기에 하나님 보시기에 악했다.


오난이 죽은 뒤 시아버지는 나를 오래 쳐다보았다. 그 눈빛을 나는 기억한다. 슬픔보다 두려움에 가까웠다. 이 여자 곁에 가면 아들이 죽는다. 그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친정으로 돌아가 과부로 지내거라. 내 아들 셀라가 다 클 때까지 기다려라."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셀라는 아직 어렸다. 시아버지는 셀라마저 형들처럼 죽을까 봐 겁이 났던 것이다. 그러니 기다리라는 말은 약속이 아니라 미루는 말이었다. 그래도 나는 짐을 쌌다. 과부의 옷을 입고 아버지 집으로 돌아갔다.

친정에서의 세월은 길었다. 과부는 남편 집에도 친정에도 온전히 속하지 못한다. 물 길러 우물에 가면 여자들이 말을 멈췄다. 두 남편을 잃은 여자. 다들 시아버지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나는 아침마다 같은 옷을 입었다. 거친 천, 어두운 빛깔. 그 옷이 나를 설명했다. 아이 없는 여자. 이름이 끊긴 남자의 아내.

해가 몇 번 바뀌었다. 셀라가 다 컸다는 소식이 들렸다. 나는 기다렸다. 시아버지 집에서 사람이 오기를. 아무도 오지 않았다.

그사이 시아버지의 아내, 수아의 딸이 세상을 떠났다. 시아버지는 상을 치르고 슬픔의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그 시간이 끝나자, 다시 일상으로 돌아갔다.


"네 시아버지가 양털을 깎으러 딤나로 올라온대."

누가 지나가며 전해 준 말이었다. 그 친구 히라와 함께 온다고 했다. 양털 깎는 철은 잔치 철이었다. 일꾼들이 모이고, 술이 돌고, 남자들은 들떠 있었다.

나는 그날 밤 잠을 이루지 못했다. 셀라는 이미 장성했다. 그런데도 나는 그의 아내가 되지 못했다. 시아버지는 나를 잊었거나, 잊은 척하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엘의 이름은 영영 끊긴다. 그리고 나는 이 과부 옷을 입은 채 늙어 죽는다.

새벽에 나는 과부의 옷을 벗었다.

손이 떨렸다. 그 옷을 개어 놓고, 얇은 너울로 얼굴을 가렸다. 몸을 감쌌다. 그리고 딤나로 가는 길가, 에나임 성문 곁에 가서 앉았다. 길손들이 지나다니는 자리였다. 나는 무슨 짓을 하려는지 알고 있었다. 옳은 길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때 내게 남은 길은 그것 하나뿐인 것 같았다.

해가 높아졌을 때 시아버지가 왔다.

그는 나를 알아보지 못했다. 얼굴을 가렸으니까. 그는 나를 길가의 몸 파는 여자로 여겼다. 그리고 길에서 벗어나 내게로 다가왔다.

"너와 함께 있고 싶다."

자기 며느리인 줄은 꿈에도 몰랐다. 나는 목소리를 낮추었다.

"무엇을 주시겠어요?"

"내 가축 떼에서 염소 새끼 한 마리를 보내 주마."

"그걸 보내실 때까지 맡겨 둘 것을 주시겠어요?"

"무엇을 맡기면 되겠느냐?"

나는 그의 몸에 걸린 것들을 보았다. 목에 끈으로 매단 도장. 손에 쥔 지팡이. 그 도장은 그의 이름이었고, 그 지팡이는 그의 자리였다. 길에서 만난 여자에게 내줄 물건이 아니었다.

"당신의 도장과 그 끈, 그리고 손에 든 지팡이를 주세요."

그는 망설이지 않았다. 그것들을 내 손에 건넸다. 그리고 그날 나는 아이를 가졌다.

나는 곧바로 일어나 그 자리를 떠났다. 너울을 벗고, 과부의 옷을 다시 입었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아버지 집 문간에 앉았다. 품속에는 도장과 끈과 지팡이가 있었다.


며칠 뒤 히라가 염소 새끼를 끌고 에나임에 왔다고 들었다. 그 여자에게서 맡긴 물건을 찾아오라는 심부름이었다. 그는 마을 사람들에게 물었다.

"에나임 길가에 있던 그 여자가 어디 있소?"

"여기엔 그런 여자가 없었소."

히라는 빈손으로 돌아갔다. 시아버지는 혀를 찼다고 했다.

"그냥 가지라고 해라. 괜히 찾아다니다가 우리가 웃음거리가 되겠다. 나는 염소 새끼를 보냈는데, 자네가 못 찾은 거니까."

그는 도장과 지팡이를 포기했다. 체면이 물건보다 중했다.

석 달이 지났다. 배가 불러 왔다. 감출 수 없었다. 소문은 빨랐다.

"당신 며느리 다말이 몸을 함부로 굴렸대요. 그래서 아이까지 가졌답니다."

시아버지의 대답도 빨랐다.

"끌어내서 불태워라."

그 말을 전해 들었을 때 나는 이상하게 차분했다. 이 순간을 위해 석 달 동안 그 물건들을 품고 있었다. 사람들이 나를 끌어내러 왔다. 나는 문을 나서며 심부름하는 아이를 불렀다. 보자기에 싼 것을 건넸다.

"이걸 시아버지께 가져가서 전해라. 이 물건 주인의 아이를 가졌다고. 그리고 여쭈어라. 이 도장과 끈과 지팡이가 누구의 것인지 알아보시라고."

나는 그를 공개적으로 망신 주지 않았다. 그저 물건을 보냈다. 알아볼지 말지는 그의 몫이었다.


그는 알아보았다.

나는 그 자리에 없었지만 나중에 들었다. 시아버지는 보자기를 풀고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고 했다. 자기 도장이었다. 자기 끈이었다. 날마다 손에 쥐던 지팡이였다. 그리고 그가 입을 열었다.

"그 아이가 나보다 옳다. 내가 그 아이를 내 아들 셀라에게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해설 성경은 다말이 한 일을 본받을 일로 내세우지 않는다. 다만 약속을 어기고 며느리를 버려둔 유다의 잘못이 더 컸다고 유다 스스로 인정한다. 이 고백은 유다가 달라지기 시작하는 자리로, 훗날 그는 막내 베냐민 대신 자기가 종이 되겠다고 나선다(창 44장).

불은 피워지지 않았다. 나는 살았다. 시아버지는 그 뒤로 다시는 나를 가까이하지 않았다. 그러나 나를 내치지도 않았다. 나는 유다 집안의 여자로 남았다.

그가 했다는 그 말을 나는 오래 곱씹었다. 나보다 옳다. 그 형제들 사이에서 동생을 팔자고 말했던 사람이 유다라는 것을 나는 나중에 알았다. 그날 그는 처음으로 자기 잘못을 자기 입으로 말했다. 나를 불태우라던 그 입으로.


해산 날이 왔다. 쌍둥이였다.

아이 하나가 먼저 손을 내밀었다. 산파가 재빨리 붉은 실을 집어 그 작은 손목에 매었다.

"이 아이가 먼저 나왔어요."

그런데 그 손이 도로 들어갔다. 그리고 다른 아이가 먼저 나왔다. 산파가 놀라 소리쳤다.

"어떻게 이렇게 밀치고 나오니!"

그래서 그 아이 이름을 베레스라고 했다. "밀치고 나옴"이라는 뜻이다. 손목에 붉은 실을 맨 아이는 뒤에 나왔다. 그 아이 이름은 세라가 되었다.

나는 땀에 젖은 채로 두 아이를 보았다. 끊길 뻔한 이름이 둘이 되어 돌아왔다. 먼저 손을 내민 아이가 아니라 뒤에서 밀고 나온 아이가 앞자리에 섰다. 이 집안은 늘 그랬다. 형보다 동생이 먼저 섰다. 야곱이 그랬고, 이제 내 아들이 그랬다.

해설 베레스의 자손에서 훗날 다윗 왕이 나오고, 다윗의 자손으로 예수님이 오신다. 마태복음 1장의 예수님 족보에는 다말의 이름이 또렷이 적혀 있다. 하나님은 사람의 죄와 실패로 얼룩진 집안을 통해서도 약속하신 구원의 길을 끊지 않고 이어 가셨다.

그 무렵 애굽에서는, 이 집안이 죽은 줄로만 아는 한 소년이 노예로 팔려 가 있었다.

목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