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권 창조와 족장 · 창세기 29-30장

제22장 레아와 라헬

하란. 지금의 튀르키예 남동쪽, 큰 강 유프라테스 상류의 목초지다. 형 에서를 피해 가나안에서 도망쳐 온 야곱이 이곳 우물가에 도착한다. 이 땅에는 야곱의 어머니 리브가의 오라버니 라반이 양 떼를 치며 살고 있다. 라반에게는 딸이 둘 있다. 언니 레아와 동생 라헬. 이 시대에는 남자가 아내를 얻으려면 신부의 아버지에게 값을 치렀고, 한 남자가 여러 아내를 두는 일도 흔했다.

이 장은 라반의 맏딸 레아가 들려주는 이야기다. 성경은 그녀의 눈이 "약했다"고만 짧게 적는다. 동생 라헬은 얼굴도 몸매도 아름다웠다.

이 장의 사람들: 레아(화자, 라반의 맏딸, 눈이 약함), 라헬(레아의 동생, 야곱이 사랑한 여자), 야곱(이삭의 아들, 형을 피해 하란으로 옴), 라반(레아와 라헬의 아버지, 야곱의 외삼촌), 실바(레아의 몸종), 빌하(라헬의 몸종), 르우벤(레아의 맏아들)

그 사람이 처음 우리 집에 온 날, 나는 문간에 서 있었다.

동생 라헬이 숨을 헐떡이며 달려 들어왔다. 우물가에서 웬 낯선 남자가 목자들에게 나홀의 손자 라반을 아느냐고 묻고 있었는데, 라헬이 양을 몰고 가자 그 남자가 혼자 그 큰 돌을 굴려 치우고 우리 양들에게 물을 먹여 주더니, 라헬에게 입을 맞추고 소리 내어 울었다고 했다. 자기가 리브가 고모의 아들 야곱이라고. 아버지는 그 말을 듣자마자 우물가로 뛰어나갔다. 아버지가 그렇게 뛰는 모습은 드물었다. 오래전 고모가 시집갈 때 아브라함 할아버지 댁 종이 금붙이를 잔뜩 싣고 왔던 일을 아버지는 잊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 온 사람은 빈손이었다. 지팡이 하나, 해진 꾸러미 하나. 아버지는 그를 끌어안고 입을 맞추고 집으로 데려왔다. 그 사람은 그동안 있었던 일을 다 털어놓았다. 아버지가 말했다. "너는 정말 내 뼈요 내 살이로구나."

그렇게 그는 우리와 함께 살게 되었다.

한 달이 지났다. 그는 놀지 않았다. 새벽이면 양 떼를 몰고 나갔고 해가 지면 돌아왔다. 아버지가 그를 불렀다.

"네가 내 조카라고 해서 공짜로 일만 해 줄 수는 없지 않느냐. 품삯을 얼마나 주면 되겠느냐? 말해 봐라."

그 사람은 망설이지 않았다. 내 쪽은 한 번도 보지 않았다.

"외삼촌의 작은딸 라헬을 주십시오. 그러면 칠 년 동안 일하겠습니다."

나는 물동이를 들고 그 자리를 지나가던 참이었다. 물이 조금 넘쳐 발등에 떨어졌다.

"그 아이를 남한테 주는 것보다 너한테 주는 게 낫지. 나와 함께 있자."

칠 년. 그 사람은 칠 년을 일했다. 그런데 그 칠 년이 그에게는 며칠처럼 지나갔다고 한다. 라헬을 그만큼 사랑했다. 나는 그 칠 년을 하루하루 다 셌다.


칠 년이 찼다. 그가 아버지에게 말했다. "기한이 찼습니다. 제 아내를 주십시오."

아버지는 동네 사람을 다 불러 잔치를 열었다. 고기 굽는 연기가 하늘로 오르고 포도주가 돌았다. 그리고 그날 저녁, 아버지가 나를 불렀다.

"네가 들어가거라."

나는 아버지를 쳐다보았다. 아버지는 내 눈을 피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늘 그랬다. 무엇을 하든 그게 당연하다는 얼굴을 했다.

나는 거절하지 않았다. 마음 한구석에서, 아주 작은 목소리가 이렇게 말했다. 어쩌면. 어쩌면 이번에는 나를 볼지도 모른다.

아버지는 자기 여종 실바를 내게 몸종으로 딸려 주었다. 나는 두꺼운 너울을 쓰고 어두운 장막 안으로 들어갔다. 등불은 없었다. 잔치 내내 포도주가 돌았고 밤은 깊었다. 그는 나를 라헬이라고 믿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목소리를 내면 들킬 테니까.

아침이 왔다. 빛이 장막 틈으로 들어왔다. 그가 눈을 떴고, 나를 보았다.

그 얼굴을 나는 평생 잊지 못한다. 놀람 다음에 온 것은 분노가 아니었다. 실망이었다. 마치 상한 물건을 받은 사람처럼. 그는 아무 말 없이 일어나 아버지에게 갔다.

"어떻게 저한테 이러실 수 있습니까? 제가 라헬을 얻으려고 일한 것 아닙니까? 왜 저를 속이셨습니까?"

밖에서 들려오는 그 목소리를 나는 이불 속에서 들었다. 속였다. 그 사람은 속았다고 했다. 눈먼 아버지를 속여 형의 축복을 가로챘던 사람이, 어둠 속에서 언니와 동생을 구분하지 못했다.

"우리 고장에서는 언니보다 동생을 먼저 시집보내는 법이 없다. 이 아이와의 혼인 잔치 이레를 채워라. 그러면 동생도 너에게 주마. 대신 그 아이를 위해 또 칠 년을 일해라."

그는 그대로 했다. 이레가 지나자 아버지는 라헬도 그에게 주었다. 라헬에게는 여종 빌하를 몸종으로 딸려 주었다. 그는 라헬을 나보다 더 사랑했다. 그리고 다시 칠 년을 아버지 밑에서 일했다.

나는 첫 아내였다. 그리고 아무도 원하지 않은 아내였다.


그런데 여호와께서 보고 계셨다.

내가 사랑받지 못하는 것을 보시고 하나님은 내 태를 여셨다. 라헬은 아이가 생기지 않았다.

첫아들을 안았을 때 나는 그 아이 얼굴을 들여다보며 이름을 지었다. 르우벤. "보라, 아들이다"라는 뜻이다. "여호와께서 내 괴로움을 살피셨어. 이제는 남편도 나를 사랑하겠지."

사랑하지 않았다.

둘째를 낳고 나는 시므온이라고 불렀다. "들으셨다"는 뜻이다. "내가 사랑받지 못한다는 걸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이 아이도 주셨어."

셋째를 낳고 나는 레위라고 불렀다. "붙는다"는 뜻이다. "아들을 셋이나 낳았으니, 이제는 남편이 내게 마음을 붙이겠지."

남편은 여전히 저녁이면 라헬의 장막으로 갔다.

넷째를 낳았을 때, 나는 아이를 안고 한참을 앉아 있었다. 그리고 남편에게서 눈을 거두었다. 그 아이는 유다라고 불렀다. "찬양"이라는 뜻이다. "이번에는 여호와를 찬양하겠어."

처음으로, 아이 이름에 남편이 들어가지 않았다. 그 뒤로 한동안 아이가 생기지 않았다.

해설 야곱의 열두 아들은 훗날 이스라엘 열두 지파의 조상이 된다. 사랑받지 못한 레아에게서 제사장 집안인 레위 지파와, 다윗 왕과 예수님이 나오시는 유다 지파가 나왔다. 하나님은 사람이 외면한 자리에서 구원의 역사를 이어 가신다.


라헬이 남편에게 소리치는 것을 들었다.

"나도 아이 낳게 해 줘요. 안 그러면 나 죽어 버릴 거예요."

남편이 화를 냈다. 그가 라헬에게 화를 내는 걸 나는 처음 보았다. "내가 하나님이라도 되느냐? 네게 아이를 안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라헬은 자기 여종 빌하를 남편에게 주었다. 빌하가 아들을 낳으면 그 아이를 자기 무릎에 받아 자기 자식으로 삼겠다고. 빌하가 아들을 낳자 라헬은 단이라고 이름 지었다. "하나님이 내 억울함을 풀어 주시고 내 기도를 들어 아들을 주셨다." 빌하가 또 아들을 낳자 라헬은 납달리라고 했다. "내가 언니와 죽기 살기로 겨뤄서 이겼다."

해설 아내가 아이를 낳지 못하면 자기 여종을 남편에게 주어 그 아이를 자기 자식으로 삼는 것은 당시 이 지역의 관습이었다. "무릎에 받는다"는 말은 그 아이를 정식으로 내 자식으로 인정한다는 표시다. 사라와 하갈 때처럼, 성경은 이 관습을 기록할 뿐 좋게 여기지 않으며, 그 결과 가정에 다툼과 상처가 쌓이는 모습을 그대로 보여 준다.

이겼다고. 나는 그 말을 오래 곱씹었다. 우리는 그렇게 되어 있었다. 한 남자를 사이에 둔 자매가 아니라, 서로 이기고 지는 사이.

나도 똑같이 했다. 내 여종 실바를 남편에게 주었다. 실바가 아들을 낳자 나는 갓이라고 불렀다. "복이 왔다." 실바가 또 아들을 낳자 아셀이라고 불렀다. "나는 행복하다. 여자들이 다 나를 행복한 여자라고 부를 거야."

행복하지 않았다. 다들 알았다.


밀을 거두던 철이었다. 큰아들 르우벤이 들에서 합환채를 캐 왔다. 그 뿌리를 먹으면 아이가 생긴다고 여자들이 믿던 풀이다. 그 아이는 그걸 내게 내밀며 웃었다. 엄마 주려고 캐 왔다고.

라헬이 그걸 보았다.

"언니, 그 합환채 나 좀 줘."

나는 참았던 것을 쏟았다. "내 남편을 빼앗아 간 게 작은 일이니? 이제는 내 아들 합환채까지 빼앗으려고?"

라헬은 잠깐 말이 없었다. 그러더니 말했다. "그럼 그 합환채 주면, 오늘 밤에는 그이를 언니한테 보낼게."

나는 남편을 샀다. 합환채 몇 뿌리로.

해 질 녘, 그가 들에서 돌아올 때 나는 길까지 나가서 그를 맞았다. "오늘은 제게로 오셔야 해요. 제 아들의 합환채로 당신을 샀어요." 그는 아무 말 없이 따라왔다.

하나님이 내 기도를 들으셨다. 합환채가 아니었다. 합환채는 라헬이 가져갔고, 나는 그날 이후 다시 아이를 가졌다. 다섯째 아들, 잇사갈. "값"이라는 뜻이다. "내가 여종을 남편에게 준 것을 하나님이 갚아 주셨어." 그리고 여섯째, 스불론. "함께 산다"는 뜻이다. "하나님이 내게 좋은 선물을 주셨어. 아들을 여섯이나 낳았으니 이제는 남편이 나와 함께 살겠지."

나는 끝내 그 기대를 버리지 못했다.

그 뒤에 딸을 하나 낳았다. 디나라고 불렀다.


그리고 하나님이 라헬을 기억하셨다.

라헬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 태를 여셨다. 라헬이 아들을 낳았다. 그 아이를 처음 품에 안고 라헬이 울면서 말했다. "하나님이 내 부끄러움을 씻어 주셨어." 그리고 이름을 요셉이라고 했다. "여호와께서 아들 하나를 더 주시기를." 그 아이를 안고서도 라헬은 벌써 다음 아들을 바라고 있었다.

남편은 요셉을 들어 올려 오래 들여다보았다. 내 여섯 아들 중 누구도 그렇게 안긴 적은 없었다. 나는 그 장면에서 눈을 돌렸다.

요셉이 태어나자 남편은 아버지에게 고향으로 돌아가겠다고 했다. 처자식을 데리고. "제가 외삼촌께 어떻게 일했는지 아시지 않습니까. 제가 일해서 얻은 처자식을 주시고, 가게 해 주십시오." 아버지는 붙잡았다. "여호와께서 너 때문에 내게 복을 주셨다는 걸 내가 알았다. 네가 나를 좋게 여긴다면 더 있어라. 품삯을 정해라. 주마." 남편이 말했다. "제가 오기 전에는 외삼촌 재산이 적었는데 지금은 떼를 이루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언제 제 집을 세웁니까? 제게 아무것도 주실 것 없습니다. 한 가지만 해 주시면 제가 다시 양 떼를 치겠습니다."

남편은 이상한 품삯을 정했다. 아버지의 양과 염소 가운데 얼룩진 것, 점박이, 검은 양만 자기 몫으로 하겠다고. 앞으로 그런 새끼가 태어나면 그게 자기 품삯이고, 나중에 자기 떼에 얼룩 없는 것이 섞여 있으면 훔친 걸로 쳐도 좋다고. 아버지는 승낙했다. 그리고 그날로 얼룩진 짐승들을 몽땅 골라 내 남자 형제들에게 맡겨 사흘 길 떨어진 곳으로 보내 버렸다. 남편에게는 흰 양과 검은 염소만 남았다. 아버지다웠다.

남편은 버드나무, 살구나무, 신풍나무의 푸른 가지를 꺾어 껍질을 벗겨 흰 줄무늬를 냈다. 그것을 양들이 물 먹으러 오는 구유 앞에 세웠다. 튼튼한 짐승들이 새끼를 밸 때만 그렇게 했고, 약한 것들 앞에는 두지 않았다. 그렇게 태어난 새끼는 따로 떼어 아버지의 양과 섞이지 않게 했다. 해가 갈수록 얼룩진 새끼가 쏟아져 나왔다. 튼튼한 것은 남편 몫이 되고, 약한 것은 아버지 몫이 되었다.

해설 껍질 벗긴 가지를 보면 얼룩진 새끼가 나온다는 것은 당시 사람들의 민간 믿음이었다. 다음 장(창 31:9-12)에서 야곱은 꿈에 하나님이 보여 주셨다며, 라반의 짐승을 빼앗아 자기에게 주신 분은 하나님이셨다고 고백한다. 야곱의 꾀보다 하나님의 돌보심이 그를 부자로 만든 것이다.

그렇게 몇 해가 지나는 동안 남편은 큰 부자가 되었다. 양 떼와 남종 여종, 낙타와 나귀가 셀 수 없이 많아졌다.

아버지의 아들들이 수군대기 시작했다. 아버지의 얼굴도 예전 같지 않았다. 나는 그 얼굴을 안다. 무언가를 빼앗기기 직전의, 그리고 그걸 되찾으려고 무슨 짓이든 할 사람의 얼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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