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권 창조와 족장 · 창세기 28장
제21장 벧엘의 사다리
브엘세바. 야곱은 눈먼 아버지 이삭을 속여 형 에서가 받을 축복을 가로챘다. 형 에서는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동생을 죽이겠다고 벼른다. 어머니 리브가는 야곱을 자기 오라버니 라반이 사는 하란으로 피신시키기로 했다. 하란은 밧단아람이라고도 불리는 땅으로, 지금의 튀르키예 남동쪽, 가나안에서 북쪽으로 걸어서 몇 주가 걸리는 먼 곳이다. 할아버지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떠나온 바로 그 땅이기도 하다.
이 장은 이삭의 둘째 아들 야곱이 들려주는 이야기다. 집을 떠나 본 적이 거의 없는, 장막 안의 사람이었다.
이 장의 사람들: 야곱(화자, 이삭의 둘째 아들, 형의 축복을 가로챔), 이삭(야곱의 아버지, 눈이 어두움), 리브가(야곱의 어머니), 에서(야곱의 형, 동생을 죽이려 벼름), 라반(리브가의 오라버니, 하란에 삶), 이스마엘(아브라함의 다른 아들), 마할랏(이스마엘의 딸, 에서의 새 아내)
아버지가 나를 불렀을 때 나는 그 앞에 서기가 무서웠다.
얼마 전 염소 털을 감고 섰던 바로 그 자리였다. 아버지의 흐린 눈이 나를 향했다. 이번에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너는 누구냐고, 묻지 않았다. 아버지는 내가 누군지 알고 있었다.
"가나안 여자 중에서 아내를 얻지 마라. 지금 일어나 밧단아람으로 가거라. 네 외할아버지 브두엘의 집으로 가서, 네 외삼촌 라반의 딸 중에서 아내를 얻어라. 전능하신 하나님이 너에게 복을 주셔서 자식을 많이 낳고 번성하게 하시고, 너를 통해 여러 민족이 나오게 하시기를 바란다.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복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셔서, 지금 네가 나그네로 사는 이 땅,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주신 이 땅을 네가 차지하게 되기를 바란다."
아브라함의 복. 아버지는 그것을 내게 다시 주었다. 속아서가 아니라 알고서. 그 손이 내 머리 위에 얹혔을 때, 나는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꾸중을 들었다면 차라리 나았을 것이다.
그렇게 아버지는 나를 보냈다. 어머니의 오라버니 라반에게로.
나중에 들으니 형 에서도 그 모든 걸 지켜보았다고 했다. 아버지가 나를 축복해 밧단아람으로 보내는 것, 가나안 여자를 얻지 말라고 당부하는 것, 내가 그 말에 따라 길을 떠나는 것. 그제야 형은 가나안 여자들이 아버지 눈에 차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 그래서 할아버지의 다른 아들 이스마엘을 찾아가, 그의 딸이자 느바욧의 누이인 마할랏을 아내로 데려왔다. 이미 아내가 둘 있는데 하나를 더 얻은 것이다. 형은 아버지 마음을 얻고 싶었던 것 같다. 늘 한 박자 늦게, 늘 엉뚱한 방향으로.
나는 브엘세바를 떠나 북쪽으로 걸었다.
지팡이 하나. 어깨에 멘 꾸러미 하나. 낙타도 종도 없었다. 할아버지의 종이 어머니를 데리러 하란에 갈 때는 낙타 열 마리에 선물을 가득 싣고 갔다고 들었다. 나는 맨몸이었다. 아버지의 장자 축복을 받은 사람이 도망자처럼 걸어가고 있었다.
첫날은 뒤를 자주 돌아보았다. 형이 따라올 것 같았다. 형의 활 솜씨를 나는 안다. 들판에서 노루를 쏘아 넘어뜨리는 걸 몇 번이나 보았다. 풀숲이 흔들릴 때마다 등줄기가 서늘했다.
둘째 날부터는 발바닥이 아팠다. 나는 장막에서 양을 치고 죽을 끓이던 사람이었다. 이렇게 오래 걸어 본 적이 없었다. 샌들 끈이 발등을 파고들었고 물 가죽부대는 생각보다 빨리 가벼워졌다. 우물이 보이면 한참 망설였다. 거기 누가 있을지 몰라서.
걸으면서 자꾸 그 장막 안의 냄새가 떠올랐다. 어머니가 끓인 고기 냄새, 형의 옷에서 나던 들판 냄새, 내 손등에 감긴 염소 가죽의 비린내. 아버지의 손가락이 그 털 위에서 멈췄던 순간. 목소리는 야곱인데 손은 에서로구나. 그 말이 발걸음마다 따라왔다.
나는 축복을 받았다. 그런데 손에 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형의 땅도, 형의 양 떼도, 아버지의 장막도. 내가 가진 것이라고는 등에 진 꾸러미와 형의 미움뿐이었다. 축복이 이런 것인가. 차라리 팥죽이나 끓이며 장막에 있을 걸 그랬나. 그런 생각을 하다가도, 아버지가 마지막에 말한 아브라함의 복을 떠올리면 다시 걸을 수 있었다.
길을 가다 어느 곳에 이르렀을 때 해가 졌다. 마을이 멀지 않았지만 들어가지 않았다. 낯선 사람들 틈에 끼고 싶지 않았다. 나는 그 자리에서 밤을 지내기로 했다.
돌이 많은 땅이었다. 나는 그중 하나를 골라 머리맡에 놓았다. 차가웠다. 하늘에 별이 떴다. 나는 누워서 생각했다. 어머니는 며칠만 있다 오라고 했다. 정말 며칠이면 될까. 형의 분이 풀릴까. 그리고 그 축복은 정말 내 것일까. 속여서 받은 축복도 축복일까.
그러다 잠이 들었다.
꿈을 꾸었다.
땅 위에 사다리 하나가 서 있었다. 아니, 사다리라기보다는 끝없이 위로 이어진 계단 같았다.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아 있었다. 그리고 그 위로 하나님의 천사들이 오르락내리락하고 있었다. 올라가는 이도 있고 내려오는 이도 있었다. 하늘과 땅이 끊어져 있지 않았다. 내가 누운 이 돌밭이, 하늘과 이어져 있었다.
그 꼭대기에 여호와께서 서 계셨다. 그리고 내게 말씀하셨다.
나는 여호와다. 네 할아버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고 이삭의 하나님이다. 네가 누워 있는 이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겠다.
네 자손은 땅의 먼지처럼 많아져서 동서남북으로 퍼져 나갈 것이다. 땅의 모든 민족이 너와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을 것이다.
보라, 내가 너와 함께 있다.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켜 주고, 너를 다시 이 땅으로 데려오겠다. 내가 너에게 약속한 것을 다 이룰 때까지 나는 너를 떠나지 않겠다.
꾸중은 한마디도 없었다. 거짓말에 대해서도, 염소 털에 대해서도, 내가 아버지 앞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팔았던 일에 대해서도. 하나님은 할아버지에게 하셨던 약속을, 아버지에게 하셨던 약속을, 이제 내게 하셨다. 내가 그럴 만한 사람이어서가 아니었다. 그건 나도 알았다.
그리고 마지막 말씀. 너를 떠나지 않겠다. 나는 집을 떠나왔다. 어머니도, 아버지도 떠나왔다. 그런데 나를 떠나지 않겠다는 분이 계셨다.
해설 이 사다리는 하늘과 땅을 잇는 길을 하나님이 먼저 열어 주신다는 그림이다. 신약에서 예수님은 제자 나다나엘에게 "하나님의 천사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요 1:51)고 하시며 이 장면을 자신에게 적용하셨다. 죄인이 하나님께 나아갈 길은 사람이 쌓아 올리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서 내려오신 예수님 자신이라는 뜻이다.
눈을 떴을 때 하늘은 아직 어두웠다. 나는 벌떡 일어나 앉았다. 숨이 가빴다. 사방은 조용했다. 사다리도 천사도 없었다. 바람이 마른 풀을 쓸고 지나가는 소리, 멀리서 들개가 우는 소리뿐이었다. 머리맡에는 내가 베고 잔 그 차가운 돌이 그대로 있었다. 그런데 모든 것이 달라 보였다.
"여호와께서 정말 여기 계셨구나. 그런데 나는 몰랐다."
말하고 나니 몸이 떨렸다. 무서웠다. 형의 칼이 무서웠던 것과는 다른 무서움이었다.
"여기가 얼마나 두려운 곳인가. 여기가 바로 하나님의 집이다. 여기가 하늘의 문이다."
나는 다시 잠들 수가 없었다. 동이 틀 때까지 그 돌 옆에 앉아 있었다.
아침이 밝자 나는 베고 잤던 돌을 들어 세웠다. 생각보다 무거웠다. 흙을 파고 아랫부분을 묻어 똑바로 서게 했다. 그리고 꾸러미에서 기름병을 꺼냈다. 나는 그것을 돌 꼭대기에 부었다. 기름이 돌 표면을 타고 천천히 흘러내렸다.
나는 그곳을 벧엘이라고 불렀다. 하나님의 집이라는 뜻이다. 그 근처 마을의 원래 이름은 루스였다.
해설 돌을 세우고 기름을 붓는 것은 "여기서 하나님을 만났다"는 것을 기억하려고 표시해 두는 일이었다. 돌 자체를 섬기는 우상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신 일을 잊지 않기 위한 기념비다. 벧엘은 "하나님의 집"이라는 뜻으로, 이후 야곱이 다시 돌아와 제단을 쌓는 중요한 장소가 된다.
그리고 나는 서원했다. 소리 내어.
"하나님이 저와 함께 계셔서, 제가 가는 이 길에서 저를 지켜 주시고, 먹을 빵과 입을 옷을 주셔서, 제가 무사히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게 해 주시면, 여호와께서 제 하나님이 되실 것입니다. 제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은 하나님의 집이 될 것이고, 하나님이 제게 주시는 모든 것에서 십분의 일을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습니다."
하나님은 조건 없이 약속하셨는데, 나는 조건을 걸었다. 하시면, 하겠습니다. 그때 나는 그런 사람이었다. 받은 만큼 계산하고, 줄 것을 먼저 정해 두는 사람. 그래도 그 서원은 진심이었다. 내 평생 가장 진심이었다.
해설 십일조는 받은 것의 십분의 일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다. 할아버지 아브라함도 멜기세덱에게 십분의 일을 드린 적이 있다(창 14장). 이는 "내가 가진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왔다"는 고백이며, 훗날 모세의 율법에서 이스라엘 백성의 규례가 된다.
떠나기 전에 나는 그 돌기둥을 한 번 더 돌아보았다. 기름에 젖은 돌이 아침 햇살에 번들거렸다. 어젯밤까지만 해도 아무 데나 굴러다니던 돌이었다. 이 돌밭도 그랬다. 나는 여기가 그냥 지나가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하나님은 장막 안에도, 아버지의 제단 앞에도 계시겠지만, 도망자가 쓰러져 잠든 이런 돌밭에까지 오실 줄은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분은 오셨다. 내가 찾아가기 전에 먼저.
나는 지팡이를 짚고 일어섰다. 북쪽으로 가는 길이 아침 빛 속에 길게 뻗어 있었다. 발바닥은 여전히 아팠다. 그러나 이제는 뒤를 덜 돌아보았다.
하란까지는 아직 멀었다. 거기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지, 나는 아무것도 몰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