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권 창조와 족장 · 창세기 2장
제2장 동산
하나님이 엿새 동안 세상을 다 지으신 뒤의 이야기다. 앞 장이 하늘과 땅 전체를 멀리서 내려다본 이야기라면, 이 장은 그 여섯째 날 사람이 지어지던 자리로 가까이 다가간다. 무대는 하나님이 동쪽 땅 에덴에 만드신 동산이다. 그 동산에서 흘러나온 강 가운데 둘, 힛데겔과 유브라데는 지금의 티그리스 강과 유프라테스 강이다. 오늘날 이라크 땅을 흐르는 바로 그 강들이다.
이 장도 첫 사람 아담이 들려주는 이야기다. 그는 흙으로 지어졌고, 동산을 돌보는 일을 맡았으며, 그곳에서 처음으로 자기와 같은 사람을 만난다.
이 장의 사람들: 아담(화자, 흙으로 지어진 첫 사람), 하와(아담의 갈빗대로 지어진 아내)
일곱째 날, 하나님은 쉬셨다.
하실 일이 다 끝났기 때문이다. 하늘과 땅과 그 안의 모든 것이 다 지어졌다. 하나님은 그날을 복 주시고, 다른 날들과 구별하여 거룩하게 하셨다. 지으시던 모든 일을 마치고 그날 쉬셨기 때문이다.
해설 하나님이 쉬셨다는 것은 지치셨다는 뜻이 아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피곤하지도 곤비하지도 않으신다고 말한다(사 40:28). 하실 일을 다 이루셨다는 뜻이다. 이 일곱째 날이 훗날 안식일 계명의 뿌리가 되고(출 20:11), 신약은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가는 것을 구원의 그림으로 말한다(히 4장).
그날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할 일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하나님이 쉬시는 날이었다. 하와와 나는 무화과나무 그늘에 앉아 동산을 바라보았다. 바람이 풀을 쓸고 지나갔다. 새들이 울었다. 아무것도 새로 생기지 않았는데, 모든 것이 있었다. 피곤해서 쉬는 것과 다 이루어서 쉬는 것은 다르다는 것을, 나는 그날 몸으로 알았다.
하와가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나는 그녀를 처음 만난 날을 생각했다. 바로 전날이었다. 그런데 아주 오래전 일 같았다.
그 이야기를 하려면 내가 눈을 뜬 날로 돌아가야 한다.
그때 땅에는 아직 비가 내린 적이 없었다. 하나님이 비를 내리지 않으셨고, 땅을 갈 사람도 없었다. 그래서 들에는 아직 덤불도 없었고 밭에는 채소도 나지 않았다. 대신 땅에서 안개가 올라와 온 땅을 적셨다.
하나님은 그 젖은 땅의 흙으로 사람을 빚으셨다. 그리고 그 코에 생명의 숨을 불어넣으셨다. 그러자 사람이 살아 있는 존재가 되었다.
그게 나다.
나는 흙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숨이다. 둘 중 하나만으로는 내가 아니다. 흙만 있었다면 나는 그냥 땅이었을 것이고, 숨만 있었다면 붙잡을 몸이 없었을 것이다. 나는 그 둘이 만난 자리에서 시작되었다. 가끔 손바닥을 들여다보면 손금 사이에 흙이 끼어 있다. 그걸 볼 때마다 나는 내가 어디서 왔는지 생각한다.
하나님은 동쪽 에덴 땅에 동산을 만드시고, 지으신 사람을 거기 두셨다.
처음 그 동산에 들어섰을 때를 기억한다. 나무가 많았다. 정말 많았다. 하나님은 그 땅에서 보기에도 아름답고 먹기에도 좋은 온갖 나무가 자라게 하셨다. 가지마다 열매가 달려 있었다. 붉은 것, 노란 것, 껍질이 단단한 것, 손만 대도 터지는 것. 나는 하나씩 만져 보았다. 냄새를 맡아 보았다. 배가 고프다는 게 무엇인지도 그날 처음 알았고, 그것이 채워지는 기쁨도 그날 처음 알았다.
동산 한가운데에는 나무 두 그루가 있었다. 하나는 생명나무였다. 다른 하나는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였다.
동산에는 물이 흘렀다. 강 하나가 에덴에서 시작되어 동산을 적시고, 거기서 넷으로 갈라졌다.
첫째 강은 비손이다. 하윌라 땅을 휘감아 흐른다. 그 땅에는 금이 나는데, 아주 좋은 금이다. 향기로운 나무 진액인 베델리엄과 호마노라는 보석도 난다. 둘째 강은 기혼이다. 구스 땅을 휘감아 흐른다. 셋째 강은 힛데겔이다. 앗수르 동쪽으로 흐른다. 넷째 강은 유브라데다.
나는 그 강들을 따라 끝까지 가 본 적은 없다. 하지만 물줄기가 갈라지는 자리에는 자주 갔다. 하나였던 물이 넷이 되어 사방으로 흘러가는 것을 보고 있으면, 이 동산에서 시작된 것이 온 땅으로 흘러가는 것 같았다.
하나님은 나를 데려다 에덴 동산에 두시고, 그 동산을 일구고 지키게 하셨다.
일이 있었다. 나는 그게 좋았다. 가지를 정리하고, 물길을 살피고, 열매가 떨어진 자리를 치웠다. 땀이 났지만 고되지 않았다. 내가 손을 대면 동산이 조금씩 더 동산다워졌다.
아침이면 땅에서 안개가 올라왔다. 해가 뜨기 전, 풀잎마다 물방울이 맺히고 나무 사이로 흰 김이 낮게 깔렸다. 나는 그 안개 속을 맨발로 걸었다. 발바닥이 젖었다. 내가 빚어진 흙도 이렇게 젖어 있었을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면 발밑의 땅이 남 같지 않았다.
하루가 끝나면 손을 씻으러 강으로 내려갔다. 물은 차고 맑았다. 바닥의 자갈이 다 보였다. 나는 물에 비친 내 얼굴을 들여다보곤 했다. 그때는 그게 이 세상에서 하나뿐인 얼굴이었다.
하나님이 나에게 명령하셨다.
동산에 있는 모든 나무의 열매는 네가 마음대로 먹어도 된다. 그러나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마라.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네가 반드시 죽을 것이다.
모든 나무. 그리고 단 하나.
나는 그 말씀을 들으며 동산을 둘러보았다. 셀 수 없이 많은 나무가 다 내 것이었다. 금지된 것은 그 가운데 하나뿐이었다. 그 나무 앞을 지날 때 나는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피할 이유가 없었다. 그냥 먹지 않으면 되었다. 그때는 그게 어렵지 않았다.
죽는다는 게 무엇인지 나는 몰랐다. 아무것도 죽어 본 적이 없었으니까. 그래도 그 말씀의 무게는 알았다. 하나님은 다른 어떤 일에도 그렇게 말씀하신 적이 없었다.
해설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는 열매에 무슨 마법이 있었다기보다, 무엇이 선이고 악인지를 하나님 말씀이 아니라 내가 정하겠느냐를 가르는 나무였다는 풀이가 많다. "반드시 죽는다"는 몸의 죽음만이 아니라 생명이신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지는 것까지 뜻한다(롬 6:23).
하나님이 말씀하셨다.
사람이 혼자 있는 것이 좋지 않다. 내가 그에게 알맞은 돕는 짝을 만들어 주겠다.
해설 "돕는 짝"의 "돕는"(히브리어 "에제르")은 낮은 사람이나 보조라는 뜻이 아니다. 성경에서 이 말은 하나님께도 쓰인다. "나의 도움은 여호와에게서 온다"(시 121:2)의 "도움"이 같은 말이다. 마주 보며 서로 부족한 것을 채우는 동등한 짝이라는 뜻이다.
그때까지 하나님은 지으신 것마다 좋다고 하셨다. 좋지 않다는 말씀은 그것이 처음이었다. 나는 그 말씀을 나중에 들었다. 그 순간에는 내가 혼자라는 것도 몰랐다.
하나님은 흙으로 온갖 들짐승과 하늘의 온갖 새를 지으시고, 내가 무엇이라고 부르는지 보시려고 나에게 데려오셨다. 내가 생물 하나하나를 부르는 그것이 곧 그 이름이 되었다.
긴 하루였다. 짐승들이 하나씩 둘씩 내 앞으로 왔다. 목이 긴 것, 귀가 늘어진 것, 몸에 줄무늬가 있는 것. 나는 그것들을 한참 바라보다가 이름을 불렀다. 어떤 것은 소리를 따서 불렀고, 어떤 것은 걸음걸이를 보고 불렀다. 내가 부르면 그것이 그 이름이 되었다. 하나님은 고치지 않으셨다. 옆에서 보고만 계셨다.
나는 모든 가축과 하늘의 새와 들의 모든 짐승에게 이름을 지어 주었다.
그런데 이름을 붙일수록 이상한 것이 보였다. 사자 곁에는 사자가 있었다. 비둘기 곁에는 비둘기가 있었다. 모두 저와 닮은 짝이 있었다. 나는 마지막 짐승이 지나간 뒤에도 한참 서 있었다. 내 앞에는 아무도 오지 않았다. 나와 닮은 것은 없었다. 나를 도울 짝이 없었다.
그제야 알았다. 하나님이 왜 짐승들을 나에게 데려오셨는지.
하나님이 나를 깊이 잠들게 하셨다.
그 잠은 기억에 없다. 깨어났을 때 옆구리 한쪽이 조금 낯설었던 것만 기억한다. 아프지는 않았다. 하나님은 내가 잠든 사이 내 갈빗대 하나를 꺼내시고 그 자리를 살로 메우셨다. 그리고 나에게서 꺼내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녀를 나에게 데려오셨다.
그녀가 걸어오고 있었다.
나는 그날 셀 수 없이 많은 이름을 지었다. 그런데 그녀를 보았을 때는 이름보다 다른 말이 먼저 나왔다. 저절로 나왔다.
"드디어, 이 사람이구나. 내 뼈에서 나온 뼈, 내 살에서 나온 살. 남자에게서 나왔으니 여자라고 부르겠다."
그녀가 웃었다. 나도 웃었다. 하루 종일 짐승들을 보며 찾던 것이 바로 거기 서 있었다. 나와 닮았지만 나와 달랐다. 나에게서 나왔지만 내가 만든 것이 아니었다.
나는 그녀의 손을 잡아 보았다. 따뜻했다. 손가락이 내 것보다 가늘었다. 그녀는 내 손바닥의 흙자국을 엄지로 문질러 보더니 고개를 들었다. 처음으로 누군가 나를 마주 보았다. 짐승들도 나를 보았지만 그건 달랐다. 그녀의 눈 안에 내가 비쳐 있었다. 강물에 비친 것보다 훨씬 가까이.
그날 해가 질 때까지 나는 그녀에게 동산을 보여 주었다. 무화과나무, 강이 갈라지는 자리, 내가 이름 붙인 짐승들. 하나하나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이름을 불러 주었다. 그녀는 따라 불렀다. 내가 지은 이름이 다른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것을 나는 그때 처음 들었다.
그래서 남자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아내와 하나가 되고, 둘이 한 몸을 이룬다.
해설 이 구절은 성경 전체에서 결혼의 기준이 된다. 예수님은 결혼에 대해 말씀하실 때 이 구절을 그대로 인용하셨고(마 19:4-6), 바울은 남편과 아내가 한 몸이 되는 것이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를 보여 주는 그림이라고 했다(엡 5:31-32).
나에게는 떠날 아버지도 어머니도 없었다. 하지만 언젠가 우리의 아들들은 그렇게 할 것이다. 우리를 떠나 저마다 자기 짝과 하나가 될 것이다. 하나님은 처음부터 그렇게 정하셨다.
그날 우리 둘은 벌거벗고 있었지만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일곱째 날 저녁, 무화과나무 그늘에서 하와가 물었다. "동산 한가운데 그 나무는 왜 먹으면 안 돼요?"
나는 하나님께 들은 말씀을 그대로 전해 주었다. 먹으면 반드시 죽는다고. 하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는 그 말씀을 지키는 것이 어렵지 않았다.
들짐승 가운데 가장 간교한 것이 그 나무 곁에 나타나기 전까지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