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권 창조와 족장 · 창세기 22장
제17장 모리아 산
블레셋 땅 브엘세바. 아브라함이 맹세의 우물 곁에 에셀나무를 심고 살던 때다. 백 살에 얻은 아들 이삭은 아버지 어머니의 웃음이자, 하나님이 "네 자손이 이 아이에게서 이어질 것이다"라고 약속하신 바로 그 아이다. 그 아이가 이제 자라, 나무 한 짐을 등에 질 만큼 컸다. 이 장의 모리아 땅은 훗날 예루살렘이 세워지는 곳으로 전해진다.
이 장은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이 들려주는 이야기다. 성경은 이때 그의 나이를 말하지 않는다.
이 장의 사람들: 이삭(화자, 아브라함과 사라의 아들), 아브라함(이삭의 아버지), 사라(이삭의 어머니), 두 종(길에 함께 간 아브라함의 종), 나홀(아브라함의 동생, 하란에 남음), 브두엘(나홀의 아들, 리브가의 아버지)
아버지가 나를 깨운 것은 아직 어두울 때였다.
아버지는 말이 없었다. 나귀에 안장을 얹고, 종 둘을 부르고, 번제에 쓸 나무를 손수 쪼개 묶었다. 도끼 소리가 새벽 공기를 갈랐다. 아버지는 나이가 많았지만 그날은 손이 빨랐다. 너무 빨랐다. 생각할 틈을 주지 않으려는 사람처럼.
"제사 드리러 간다. 너도 가자."
나는 신이 났다. 아버지와 먼 길을 가는 건 처음이었다. 장막을 나서다 돌아보니 어머니 장막은 아직 어두웠다. 어머니는 늘 내가 어디 가는지 꼭 물었다. 그날 아버지는 어머니를 깨우지 않았다.
그 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나는 한참 뒤에야 알았다. 하나님이 아버지를 시험하시려고 부르셨다. "아브라함아." 아버지가 대답했다. "제가 여기 있습니다."
네 아들, 네가 사랑하는 외아들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거라. 내가 너에게 알려 줄 산에서 그를 번제물로 바쳐라.
해설 번제는 짐승을 잡아 제단 위에서 통째로 태워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다. 성경은 이 일을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신" 것이라고 밝히는데, 죄짓게 하려는 유혹이 아니라 믿음이 참된지 드러내고 단련하신다는 뜻이다(약 1:13). 그래서 뒤에 하나님이 "이제 내가 알았다"고 하신 것도 모르시던 것을 새로 아셨다는 말이 아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이 실제 순종으로 드러났음을 사람의 말로 인정해 주신 것이다.
나는 그 말씀을 몰랐다. 아버지만 알았다. 아버지는 사흘 동안 그 말씀을 혼자 지고 걸었다.
사흘을 걸었다.
첫날은 들판이었다. 나는 종들과 앞서 걷다가 돌멩이를 차며 장난을 쳤다. 아버지는 뒤에서 나귀 고삐를 쥐고 묵묵히 따라왔다. 둘째 날은 돌이 많은 오르막이었다. 해가 뜨거워 입술이 말랐다. 아버지는 자기 몫의 물을 나에게 더 주었다. 나는 아무 생각 없이 받아 마셨다.
밤이면 아버지는 불가에 앉아 나를 오래 바라보았다. 내가 눈을 마주치면 고개를 돌렸다. 한번은 자다가 눈을 떴는데, 아버지가 내 곁에 앉아 내 머리카락을 쓰다듬고 있었다. 별빛 아래 아버지의 입술이 움직였다. 기도하는 것 같았다. 나는 다시 눈을 감았다. 아버지가 피곤해서 그런 줄 알았다.
어머니 이야기도 했다. 내가 태어나던 날 어머니가 얼마나 웃었는지. 하나님이 나를 웃게 하셨다고, 온 동네에 그렇게 말하고 다녔다고. 아버지는 그 이야기를 하면서 웃지 않았다.
셋째 날 아침, 아버지가 걸음을 멈추고 눈을 들었다. 멀리 산 하나가 보였다. 아버지는 그 산을 한참 보았다.
"너희는 나귀와 여기서 기다려라. 나는 아이와 저기 가서 경배하고 너희에게 돌아오겠다."
돌아오겠다. 우리가. 아버지는 그렇게 말했다. 나는 그 말을 그냥 흘려들었다. 오래 지나서야 그 말을 다시 떠올렸다.
해설 아브라함은 종들에게 "우리가 돌아오겠다"고 말했다. 히브리서 11장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은 죽은 사람도 살리실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이삭을 바칠 수 있었다고 설명한다(히 11:17-19). 이삭을 통해 자손을 주겠다는 약속을 하나님이 반드시 지키실 것을 믿은 것이다.
아버지는 번제 나무를 내 등에 지웠다. 무거웠다. 아버지는 불씨 그릇과 칼을 손에 들었다. 우리 둘이 함께 걸었다. 종들의 모습이 바위 뒤로 사라지자 산은 아주 조용해졌다. 내 발소리, 아버지 발소리, 등에서 나무끼리 부딪는 소리뿐이었다.
나는 그때까지 수없이 제사를 보았다. 그래서 무엇이 빠졌는지 알았다.
"아버지."
"그래, 아들아. 나 여기 있다."
"불도 있고 나무도 있는데, 번제로 드릴 어린양은 어디 있어요?"
아버지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앞을 본 채로 대답했다.
"아들아, 번제로 드릴 어린양은 하나님이 친히 마련하실 거다."
목소리가 갈라져 있었다. 나는 그것을 들었다. 그리고 더 묻지 않았다. 우리 둘은 함께 계속 걸었다.
하나님이 알려 주신 곳에 닿았다.
산꼭대기는 넓고 평평했다. 바람이 불었다. 멀리 우리가 걸어온 골짜기가 보였다. 종들이 기다리는 바위는 보이지 않았다. 세상에 아버지와 나, 둘만 남은 것 같았다. 나는 등에서 나무를 내려놓고 어깨를 주물렀다. 끈이 닿았던 자리가 쓰라렸다. 아버지는 한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고 서 있었다. 하늘을 보는 것도 아니고 땅을 보는 것도 아니었다.
아버지는 돌을 모아 제단을 쌓았다. 나도 거들었다. 돌 하나하나가 차가웠다. 아버지가 그 위에 나무를 가지런히 벌여 놓았다. 그러고는 나를 보았다.
그때 알았다. 어린양이 어디 있는지.
아버지가 밧줄을 들었다. 손이 떨리고 있었다. 나는 젊었고 아버지는 아주 늙었다. 뿌리치고 달아날 수 있었다. 나는 그러지 않았다. 아버지가 하나님을 믿는 것을 평생 보아 왔다. 아버지는 돌아오겠다고 했다. 우리가. 나는 그 말 하나를 붙들었다.
아버지는 나를 묶었다. 밧줄이 손목을 감을 때 아버지의 숨소리가 들렸다. 거칠고 짧았다. 아버지는 한 번도 내 눈을 보지 않았다. 그리고 나를 들어 제단 나무 위에 눕혔다. 아버지 팔이 그렇게 힘센 줄 몰랐다. 등에 나무가 배겼다. 하늘이 보였다. 아주 파랬다. 아버지가 손을 뻗어 칼을 잡았다. 칼날에 햇빛이 번쩍였다. 나는 눈을 감지 않았다. 아버지 얼굴을 보았다. 아버지는 울고 있었다.
그때 하늘에서 여호와의 사자가 아버지를 불렀다.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제가 여기 있습니다."
그 아이에게 손대지 마라. 그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마라. 네가 네 아들, 네 외아들까지도 나에게 아끼지 않았으니, 네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줄을 이제 내가 알았다.
칼이 땅에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아버지가 눈을 들어 둘러보았다. 뒤쪽 덤불에 숫양 한 마리가 뿔이 걸린 채 버둥대고 있었다. 아버지는 그리로 가서 숫양을 끌고 왔다. 그리고 나를 풀어 주었다. 매듭을 푸는 손이 아까보다 더 떨렸다. 아버지는 그 숫양을 나 대신 번제물로 바쳤다.
아버지는 나를 끌어안았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늙은 가슴이 들썩였다. 아버지 수염에 눈물이 맺혀 내 이마에 떨어졌다. 나는 그제야 다리가 떨렸다. 제단 위에서는 떨리지 않던 다리가.
나는 제단 옆에 서서 그 불을 보았다. 내가 누웠던 자리에서 숫양이 탔다. 나 대신. 그 연기 냄새를 나는 평생 잊지 못했다.
아버지는 그곳을 여호와 이레라고 불렀다. 여호와께서 마련하신다는 뜻이다. 그래서 지금도 사람들은 말한다. 여호와의 산에서 마련된다고.
해설 이삭 대신 숫양이 죽었다. 죄 없는 제물이 다른 사람 대신 죽는 이 모습은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 예수님의 십자가를 미리 보여 준다(요 1:29). 아브라함은 아들을 아끼지 않았다가 돌려받았지만, 하나님은 자기 아들을 정말로 아끼지 않고 우리 모두를 위해 내주셨다(롬 8:32). "여호와 이레"는 하나님이 필요한 것을 친히 마련하신다는 고백이다.
하늘에서 여호와의 사자가 두 번째로 아버지를 불렀다.
여호와가 말한다. 내가 나 자신을 걸고 맹세한다. 네가 이렇게 네 아들, 네 외아들까지도 아끼지 않았으니, 내가 너에게 큰 복을 주겠다. 네 자손을 하늘의 별처럼, 바닷가의 모래처럼 많게 하겠다. 네 자손이 원수의 성문을 차지할 것이다.
또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세상 모든 민족이 복을 받을 것이다. 네가 내 말에 순종했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그 말씀을 들으며 땅에 엎드려 있었다. 나도 그 곁에 엎드렸다. 흙에서 숫양 타는 냄새가 났다.
네 자손. 아버지의 자손은 나에게서 이어진다. 나는 방금 제단 위에서 죽을 뻔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하나님은 바로 그 나를 통해 온 세상에 복을 주겠다고 하셨다. 죽음 직전에서 돌려받은 목숨 위에 약속이 얹혔다.
해설 신약의 바울은 이 "자손"이 많은 사람이 아니라 한 사람, 곧 그리스도를 가리킨다고 풀이한다. 아버지가 사랑하는 외아들을 나무를 지워 산에 올린 이 이야기는, 훗날 같은 땅에서 일어날 일의 그림자로 읽혀 왔다. 하나님이 "나 자신을 걸고" 맹세하신 것은 하나님보다 더 큰 이가 없기 때문이며, 히브리서 6장은 이 맹세를 약속이 결코 바뀌지 않는다는 보증으로 설명한다.
우리는 산을 내려왔다. 둘이 올라가서, 둘이 내려왔다. 나무는 다 타고 없었다. 등이 가벼웠다. 내려오는 내내 아버지는 내 어깨에 손을 얹고 있었다. 무거운 손이었다. 나는 그 손을 치우지 않았다. 바위 뒤에서 종들이 나귀를 데리고 일어섰다. 그들은 우리 얼굴을 보고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종들에게 돌아가 함께 브엘세바로 갔고, 아버지는 거기서 살았다.
얼마 뒤 먼 고향에서 소식이 왔다. 아버지의 동생 나홀이 아내 밀가에게서 아들 여덟을 얻었다는 것이다. 맏아들 우스, 그 아래로 부스, 아람의 아버지가 된 그므엘, 게셋, 하소, 빌다스, 이들랍, 브두엘. 첩 르우마에게서도 데바, 가함, 다하스, 마아가를 얻었다고 했다. 아버지는 그 이름들을 하나하나 소리 내어 따라 했다. 고향을 떠난 지 오래된 사람의 얼굴이었다.
나는 밀가의 아들들 가운데 맨 마지막에 불린 브두엘을 기억한다. 소식을 전한 사람은 브두엘에게 딸이 있다고 했다. 이름은 리브가였다.
그날 저녁 나는 우물가 에셀나무 아래 앉아 그 이름을 한 번 입안에서 굴려 보았다. 그때 나는 그 이름이 내 삶에 들어올 줄은 생각하지 못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