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권 창조와 족장 · 창세기 19장

제15장 소돔

사해 남쪽 끝, 요단 평야의 도시 소돔. 지금은 소금 바다와 황무지뿐이지만 그때는 물이 넉넉하고 기름진 땅이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소돔을 위해 간청하던 그날 저녁, 그를 찾아왔던 세 사람 가운데 둘이 소돔으로 내려간다. 성경은 이 둘을 천사라고 부른다.

이 장은 아브라함의 조카 롯이 들려주는 이야기다. 오래전 삼촌과 땅을 나눌 때 기름진 이 평야를 골랐고, 장막을 조금씩 옮기다 결국 소돔 성 안에 집을 짓고 살게 된 사람이다.

이 장의 사람들: 롯(화자, 아브라함의 조카, 소돔 성에 삶), 두 천사(아브라함을 찾아왔던 세 사람 가운데 둘), 롯의 아내, 롯의 두 딸(소돔 남자들과 정혼함), 사위들(두 딸과 정혼한 소돔 남자들), 아브라함(롯의 삼촌, 마므레에 삶)

나는 소돔 성문에 앉아 있었다.

성문은 그 성의 어른들이 앉는 자리다. 다툼을 듣고, 거래를 지켜보고, 들어오는 사람을 살핀다. 나는 거기 앉을 만큼 소돔에 오래 살았다. 장막을 소돔 가까이 옮겼다가, 성 안으로 들어갔다가, 집을 짓고, 두 딸을 이 성 남자들과 정혼시켰다. 한 걸음씩이었다. 어느 한 걸음도 크지 않았다.

해가 질 무렵 두 사람이 성문으로 들어왔다. 나는 보자마자 일어나 땅에 엎드려 절했다. 그들에게는 이 성 사람들에게 없는 무언가가 있었다. 어릴 적 삼촌의 장막에서 맡던 공기 같은 것.

"내 주여, 이 종의 집으로 오십시오. 발을 씻고 주무시고, 아침 일찍 일어나 가실 길을 가십시오."

"아니다. 우리는 거리에서 밤을 지내겠다."

거리에서. 소돔의 밤거리에서. 나는 그게 무슨 뜻인지 알았다. 그래서 매달렸다. 몇 번이고 청했다. 그제야 그들이 나를 따라왔다. 나는 그들을 위해 상을 차리고, 누룩 넣지 않은 빵을 서둘러 구웠다. 그들이 먹었다.


잠자리에 들기 전이었다. 밖이 시끄러워졌다.

창 너머로 횃불이 보였다. 하나둘이 아니었다. 젊은이도 늙은이도, 성 안 구석구석에서 몰려온 남자들이 집을 둘러쌌다. 나는 그 얼굴들을 알았다. 성문에서 같이 앉던 사람도 있었다.

"오늘 저녁 네 집에 온 놈들 어디 있어? 끌어내. 우리가 그놈들을 욕보이겠다."

나는 밖으로 나가 뒤로 문을 닫았다. 등이 문에 닿았다. 그 문 하나가 전부였다.

"형제들, 제발 이런 악한 짓은 하지 마시오."

그리고 나는 그 말을 했다. 지금도 내 입에서 그 말이 나왔다는 것을 믿을 수 없다.

"나에게 아직 남자를 모르는 딸이 둘 있소. 그 아이들을 내보낼 테니 마음대로 하시오. 하지만 이 사람들은 내 집 지붕 아래 들어온 손님이니, 이들에게는 아무 짓도 하지 마시오."

손님을 지키려고 딸을 내주겠다고 했다. 그 순간에는 그게 옳은 줄 알았다. 소돔에서 오래 살면 무엇이 옳은지 재는 저울이 조금씩 기운다. 나는 내가 기울어진 줄도 몰랐다.

"비켜!" 누군가 소리쳤다. "이놈이 굴러 들어와 얹혀 살면서 우리 재판관 노릇을 하려 드네. 저놈들보다 너를 더 혼내 주마."

그들이 나를 밀쳤다. 문짝이 등 뒤에서 삐걱댔다. 그때 문이 안에서 열리고 손이 나와 나를 끌어들였다. 문이 닫혔다. 밖에서 비명이 터졌다. 손님들이 문 밖의 무리를, 작은 자나 큰 자나 할 것 없이 다 눈멀게 한 것이다. 그들은 밤새 문을 더듬다 지쳐 떨어졌다.

손님들이 내게 말했다. "여기 너에게 딸린 사람이 또 있느냐? 사위나 아들딸, 이 성에 있는 너의 사람들을 모두 성 밖으로 데리고 나가라. 이 성을 두고 울부짖는 소리가 여호와 앞에 너무 커서, 여호와께서 이곳을 멸하라고 우리를 보내셨다. 우리가 이곳을 멸하겠다."

해설 그 시대 그 땅에서는 내 집에 들인 손님을 목숨 걸고 지키는 것이 큰 도리였다. 그래도 그 때문에 딸을 내주겠다고 한 롯의 말을 성경은 옳다고 하지 않는다. 성경은 소돔의 죄를 교만하고 배부르면서 가난한 사람을 돌보지 않은 것(겔 16:49), 그리고 음란하여 다른 육체를 따라간 것(유 1:7)이라고 말한다.


문 밖은 조용해졌다. 눈먼 사람들이 벽을 더듬으며 흩어지는 소리가 멀어졌다. 나는 등을 문에 기댄 채 숨을 골랐다. 손님들은 탁자 곁에 서 있었다. 등잔불이 흔들렸다. 그들은 서두르지 않았다. 이 일이 처음부터 이렇게 될 줄 알았던 사람들처럼.

멸한다. 이 성을. 나는 창밖을 보았다. 성벽 너머로 별이 떠 있었다. 수십 년 본 하늘이었다. 이 집, 이 거리, 성문 자리. 내일 아침이면 없어진다고 했다.

나는 밤길을 달려 딸들과 정혼한 사위들 집으로 갔다.

"일어나라. 여기서 나가야 한다. 여호와께서 이 성을 멸하신다."

그들은 웃었다. 농담인 줄 알았다. 내 얼굴을 보면서도 웃었다. 생각해 보면 이상할 것도 없었다. 그들 눈에 나는 그저 이 성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이 한밤중에 와서 여호와를 말하니 우스울 수밖에.

동이 틀 무렵 천사들이 나를 재촉했다.

"일어나라. 여기 있는 네 아내와 두 딸을 데리고 나가라. 그렇지 않으면 이 성이 벌을 받을 때 너도 함께 망할 것이다."

나는 머뭇거렸다. 집을 둘러보았다. 이 그릇, 저 옷감, 수십 년 모은 것들. 사위들. 성문 자리. 발이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자 그들이 내 손을 잡았다. 아내의 손도, 두 딸의 손도. 그리고 우리를 끌다시피 성 밖으로 데리고 나가 세웠다. 여호와께서 나를 불쌍히 여기셨기 때문이다. 내 힘으로 나온 것이 아니었다. 끌려 나왔다.

성 밖에서 그들이 말했다. "목숨을 건지려면 달아나라. 뒤를 돌아보지 말고, 이 평야 어디에도 머물지 마라. 산으로 달아나야 죽지 않는다."

"내 주여, 그건 안 됩니다. 주께서 이 종에게 은혜를 베풀어 큰 자비로 목숨을 살려 주셨지만, 저는 산까지 달아날 수 없습니다. 가다가 재앙을 만나 죽을까 두렵습니다. 저기 보십시오, 저 성은 가깝고 작습니다. 작은 성 아닙니까? 저리로 달아나게 해 주십시오. 그러면 제가 살겠습니다."

목숨이 걸린 순간에도 나는 성을 찾았다. 산이 아니라 성을.

"좋다. 이 일도 네 청을 들어주겠다. 네가 말한 그 성은 멸하지 않겠다. 어서 그리로 달아나라. 네가 거기 들어가기 전에는 내가 아무 일도 할 수 없다."

그래서 그 성을 소알이라 부른다. 작다는 뜻이다.


우리는 달렸다. 나는 앞에서 딸들의 손을 잡고 있었다. 아내는 뒤에 있었다. 발소리가 들렸다. 그러다 들리지 않았다.

내가 소알 성문에 들어설 때 해가 떠올랐다.

그리고 하늘에서 불이 쏟아졌다. 여호와께로부터 유황과 불이 비처럼 소돔과 고모라에 내렸다. 땅이 뒤집혔다. 성들이, 온 평야가, 거기 사는 모든 사람이, 땅에서 자라던 모든 것이 엎어졌다. 등 뒤에서 열기가 밀려왔다. 나는 돌아보지 않았다.

아내는 돌아보았다. 그래서 소금 기둥이 되었다.

아내가 멈춰 선 그 자리를 나는 끝내 돌아보지 못했다. 그녀는 무엇이 그리웠을까. 집이었을까, 사위들이었을까, 그냥 거기 두고 온 삶이었을까. 나는 그녀를 탓할 수 없다. 나도 머뭇거렸으니까. 다만 나는 누군가 손을 잡아 주었고, 그녀는 마지막에 그 손을 놓았다.

해설 예수님은 마지막 날을 말씀하시며 "롯의 아내를 기억하라"고 하셨다(눅 17:32). 구원의 길에 들어서고도 마음이 두고 온 것에 매여 있으면 위험하다는 경고다.

그 아침, 삼촌 아브라함은 일찍 일어나 전날 여호와 앞에 섰던 그 언덕에 다시 올라갔다고 한다. 그리고 소돔과 고모라와 온 평야에서 가마 연기처럼 시커먼 연기가 치솟는 것을 보았다. 하나님이 평야의 성들을 엎으실 때 아브라함을 기억하셔서 나를 그 한가운데서 건져 내셨다는 것을, 나는 오랜 뒤에 알았다. 의인 열 명은 없었다. 나는 삼촌 덕에 살았다.

해설 롯은 소돔에서 흔들리며 살았지만, 베드로후서 2장은 그를 "의로운 롯"이라 부르며 소돔 사람들의 악한 행실 때문에 날마다 마음이 괴로웠다고 말한다. 롯이 건짐 받은 것은 그의 공로가 아니라 아브라함을 기억하신 하나님의 은혜였다. 하나님은 경건한 사람을 시험에서 건지실 줄 아신다(벧후 2:9).


소알에 오래 있을 수 없었다. 무서웠다. 불이 언제 이 작은 성까지 내려올지 모른다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결국 두 딸을 데리고 산으로 올라가 굴에서 살았다. 처음부터 천사가 가라고 했던 그 산이었다.

굴은 어두웠다. 아무도 오지 않았다. 딸들은 이 세상에 우리 셋만 남았다고 생각한 것 같다.

일이 어떻게 된 것인지 나는 나중에야 알았다. 큰딸이 작은딸에게 말했다고 한다. 아버지는 늙었고, 이 땅에는 세상 도리대로 우리와 짝을 지을 남자가 없다. 아버지에게 술을 드려 잠자리에 들어 아버지를 통해 자손을 잇자. 그 밤 딸들은 내게 술을 먹였고 큰딸이 내 곁에 누웠다. 이튿날 밤에는 작은딸이 그렇게 했다. 나는 술에 취해 딸이 언제 눕고 언제 일어났는지도 알지 못했다. 그렇게 두 딸이 나로 말미암아 아이를 가졌다.

큰딸이 낳은 아들의 이름은 모압이다. 작은딸이 낳은 아들의 이름은 벤암미다.

해설 모압은 모압 족속의, 벤암미는 암몬 족속의 조상이 되었다. 모압과 암몬은 훗날 이스라엘의 이웃이 되어 자주 맞선 민족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 부끄러운 시작에서 나온 모압 족속 가운데서 룻이라는 여인을 불러 다윗 왕의 증조할머니가 되게 하셨다. 룻의 이름은 마태복음 1장 예수님의 족보에도 올라 있다.

나는 기름진 땅을 골랐던 사람이다. 눈에 보기 좋은 쪽으로 한 걸음씩 걸었다. 그 길 끝에 나는 산속 굴에 있었다. 집도, 아내도, 양 떼도 없이. 이 이야기를 들은 누구라도 나처럼 그 첫걸음을 가볍게 여기지 않기를 바란다.

굴 밖으로 바람이 불면 가끔 남쪽을 보았다. 들리는 소식으로는, 삼촌이 마므레를 떠나 더 남쪽 그랄로 내려갔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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