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권 창조와 족장 · 창세기 15-16장

제13장 별을 세어 보라

가나안 남쪽 헤브론, 마므레 상수리나무 숲. 아브람은 동쪽 왕들에게 끌려간 조카 롯을 구해 돌아왔고, 소돔 왕이 내민 재물은 실 한 오라기도 받지 않았다.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그의 자손이 큰 민족이 되고 이 땅을 얻을 것이라고 여러 번 약속하셨다. 그러나 고향을 떠난 지 여러 해가 지나도록 아브람의 장막에는 아이가 없었다.

이 장은 아브람의 아내 사래가 들려주는 이야기다. 남편보다 열 살 아래이고, 평생 아이를 갖지 못한 여자다.

이 장의 사람들: 사래(화자, 아브람의 아내), 아브람(사래의 남편), 엘리에셀(다메섹 사람, 아브람 집의 종), 하갈(사래의 애굽 여종), 이스마엘(하갈이 낳은 아브람의 아들)

그 밤 남편은 장막 밖에 있었다.

하란을 떠날 때 나는 예순다섯이었다. 큰 민족이 되게 하겠다는 말씀을 남편에게 전해 들었을 때, 나는 속으로 웃지 않았다. 믿었다. 늦었지만 하나님이 하시면 된다고. 그런데 가나안에서 한 해가 가고 또 한 해가 갔다. 달마다 기다렸고 달마다 실망했다. 언제부턴가 나는 그 기다림을 남편에게 말하지 않게 되었다.

나는 자는 척하고 있었다. 전쟁에서 돌아온 뒤로 그는 잠을 잘 못 잤다. 뒤척이다 나가고, 들어왔다 또 나갔다. 나는 묻지 않았다. 그런데 그날은 오래 들어오지 않았다. 휘장 틈으로 내다보니 그가 마당 한가운데 서서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고개를 한껏 젖히고. 입술이 움직이고 있었다. 무언가를 세고 있는 것 같았다.

날이 밝자 그가 내게 다 이야기해 주었다. 환상 가운데 여호와의 말씀이 왔다고.

아브람아, 두려워하지 마라. 나는 너의 방패이고, 너의 아주 큰 상이다.

두려워하지 마라. 그분은 남편이 밤마다 무엇에 깨는지 알고 계셨다.

그런데 남편은 그 자리에서 하나님께 속에 있던 말을 다 했다고 했다. "주 여호와여, 제게 무엇을 주시렵니까? 저는 자식이 없습니다. 제 재산을 물려받을 사람은 다메섹 사람 엘리에셀입니다. 주께서 제게 자식을 주지 않으셨으니, 제 집에서 자란 종이 제 뒤를 잇게 될 것입니다."

엘리에셀. 우리 집의 충직한 종. 나는 남편이 그 이름을 입에 올렸다는 말에 가슴이 내려앉았다. 그 말은 곧 나에 대한 말이었다.

그 사람은 너의 상속자가 아니다. 네 몸에서 날 아들이 너의 상속자가 될 것이다.

그리고 그분이 남편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셨다고 했다. 내가 휘장 틈으로 본 것이 그것이었다.

하늘을 올려다보아라. 저 별들을 셀 수 있으면 세어 보아라. 네 자손이 저렇게 많아질 것이다.

남편은 여호와를 믿었다. 여호와께서는 그 믿음을 그의 의로 여기셨다. 이야기를 하는 남편의 얼굴이 내가 아는 어느 때보다 평안했다. 나는 그 얼굴이 부러웠다. 별을 본 것은 그였다. 나는 휘장 뒤에 있었다.

해설 "믿음을 의로 여기셨다"는 이 말씀은 성경 전체에서 아주 중요한 구절이다. 아브람이 무엇을 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를 옳다고 인정해 주셨다는 뜻이다. 바울은 로마서 4장과 갈라디아서 3장에서 이 구절을 들어, 사람은 행위가 아니라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다고 가르친다.

나는 이 땅을 너에게 주어 너의 것이 되게 하려고 너를 갈대아 우르에서 이끌어 낸 여호와이다.

"주 여호와여, 제가 이 땅을 받게 될 것을 무엇으로 알 수 있겠습니까?"

나를 위해 세 살 된 암소와 세 살 된 암염소와 세 살 된 숫양과 산비둘기와 집비둘기 새끼를 가져오너라.


그날 하루 나는 남편이 하는 일을 멀리서 지켜보았다.

그는 짐승들을 잡아 한가운데를 갈랐다. 반쪽씩 서로 마주 보게 땅에 늘어놓았다. 새는 가르지 않았다. 피 냄새가 퍼지자 솔개들이 하늘을 돌다가 내려왔다. 남편은 막대기를 휘둘러 쫓았다. 또 내려오면 또 쫓았다. 해가 기울 때까지.

해 질 무렵 그가 쓰러지듯 깊이 잠들었다. 나중에 그가 말하기를, 그때 무섭고 짙은 어둠이 그를 덮쳤다고 했다. 그리고 그 어둠 속에서 말씀이 들렸다고.

너는 이것을 분명히 알아 두어라. 네 자손이 남의 나라에서 나그네가 되어 그 나라 사람들을 섬기고, 사백 년 동안 괴롭힘을 당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을 종으로 부린 나라를 내가 심판하겠고, 그 뒤에 네 자손은 많은 재물을 가지고 그 나라에서 나올 것이다.

너는 오래 살다가 평안히 조상들에게 돌아가 묻힐 것이다. 네 자손은 사 대 만에 이 땅으로 돌아올 것이다. 아모리 사람들의 죄가 아직 가득 차지 않았기 때문이다.

해가 지고 캄캄해졌을 때, 연기 나는 화덕과 타오르는 횃불이 갈라놓은 고기 사이로 지나갔다. 남편은 깊은 잠 속에서 그것을 보았다. 사람끼리 약속할 때는 짐승을 갈라놓고 그 사이를 둘이 함께 걷는다. 약속을 어기면 이 짐승처럼 되어도 좋다는 뜻이다. 그런데 그날 그 사이를 지나간 것은 불뿐이었다. 남편은 걷지 않았다. 하나님 혼자 걸으셨다.

그날 여호와께서 남편과 언약을 세우셨다.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준다. 애굽 강에서부터 저 큰 강 유프라테스까지, 겐 사람, 그니스 사람, 갓몬 사람, 헷 사람, 브리스 사람, 르바 사람, 아모리 사람, 가나안 사람, 기르가스 사람, 여부스 사람의 땅을 준다.

해설 짐승을 갈라 놓고 그 사이를 지나가는 맹세는 예레미야 34장 18절에도 나온다. 그 사이를 하나님만 지나가셨으니, 이 약속을 지킬 책임을 하나님이 홀로 지신 것이다. 이 예언대로 아브람의 자손 이스라엘은 훗날 애굽에서 종살이를 하다가 사백삼십 년 만에 큰 재물을 가지고 나왔다(출 12:35-41). "아모리 사람들의 죄가 아직 가득 차지 않았다"는 말씀은 하나님이 가나안 족속에게도 오래 참으셨다는 뜻이다.


별 같은 자손. 그 약속을 받은 지 또 한 해가 갔다. 또 한 해가 갔다. 우리가 가나안에 온 지 십 년이 되었다. 남편은 여든다섯, 나는 일흔다섯이었다.

네 몸에서 날 아들. 하나님은 남편에게 그렇게 말씀하셨다. 내 몸이라고 하지는 않으셨다. 나는 그 말을 몇 번이고 곱씹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여호와께서 내 태를 닫으셨다. 그렇다면 길은 하나뿐이었다. 그 시절에는 그런 일이 드물지 않았다. 아이 못 낳는 아내가 자기 여종을 남편에게 들여 그 아이를 자기 아이로 삼는 것.

해설 아이를 못 낳는 아내가 여종을 남편에게 주어 그 아이를 자기 자식으로 삼는 일은 당시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혼인 문서에도 나오는 관습이다. 세상 기준으로는 흠잡을 데 없는 방법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이 약속하신 일을 사람의 방법으로 서둘러 이루려 한 이 선택은 집안에 오랜 갈등을 남겼다.

내게는 애굽 여자 종이 하나 있었다. 이름은 하갈. 젊고 말이 적었다.

나는 남편에게 말했다. "여호와께서 내가 아이를 낳지 못하게 하셨으니, 내 여종에게 들어가세요. 혹시 내가 그 아이를 통해 자식을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르잖아요."

남편은 내 말을 들었다. 거절하지 않았다. 나는 그가 한 번쯤은 거절해 주기를 바랐던 것 같다.

나는 하갈을 데려다 남편에게 첩으로 주었다. 내 손으로.

하갈은 곧 아이를 가졌다. 그리고 달라졌다. 물을 길어 오는 걸음이 느려졌다. 내가 부르면 대답이 늦었다. 나를 보는 눈에 뭔가가 있었다. 업신여김이었다. 나는 그 눈빛을 견딜 수 없었다.

"내가 받는 이 모욕은 당신 탓이에요. 내가 내 여종을 당신 품에 안겨 주었는데, 그 애가 임신한 걸 알고 나를 우습게 봐요. 여호와께서 당신과 나 사이를 판단하시기를 바라요."

말해 놓고 알았다. 남편 탓이 아니었다. 처음 말을 꺼낸 것은 나였다.

남편은 지쳐 보였다. "당신 여종은 당신 손에 있으니 당신 좋을 대로 하시오."

나는 하갈을 모질게 대했다. 그러자 며칠 뒤 하갈이 사라졌다. 도망친 것이다. 배 속에 아이를 품은 채로, 광야 쪽으로.


하갈은 돌아왔다. 먼지투성이 발로 장막 앞에 서서,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도망칠 때의 그 눈빛은 없었다. 나는 무슨 말부터 해야 할지 몰라 한참 서 있었다. 먼저 입을 연 것은 하갈이었다. 그리고 내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했다.

술로 가는 광야 길, 샘 곁에 주저앉아 있는데 여호와의 사자가 그녀를 찾아왔다고 했다.

사래의 여종 하갈아, 너는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가느냐?

"제 여주인 사래를 피해 도망치는 길입니다."

네 여주인에게 돌아가서 그 밑에서 순종하며 살아라. 내가 네 자손을 크게 불려서 셀 수 없을 만큼 많게 하겠다. 너는 임신했으니 아들을 낳을 것이다. 그 이름을 이스마엘이라고 하여라. 여호와께서 네 고통을 들으셨기 때문이다. 그는 들나귀처럼 거친 사람이 될 것이다. 그는 모든 사람과 맞서고, 모든 사람도 그와 맞설 것이다. 그는 모든 형제의 동쪽에서 살 것이다.

하갈은 자기에게 말씀하신 여호와를 "나를 보시는 하나님"이라고 불렀다. 내가 여기서 나를 보시는 분을 뵈었구나, 하면서. 그래서 그 샘은 브엘라해로이, "나를 보시는 살아 계신 분의 샘"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가데스와 베렛 사이에 있는 샘이다.

해설 "여호와의 사자"는 보통 천사를 뜻하는 말이지만, 이 장면에서 하갈은 그분을 "하나님"이라 부르고 성경도 "자기에게 이르신 여호와"라고 적는다. 그래서 구약에 이따금 나타나는 여호와의 사자를 사람에게 모습을 드러내신 하나님 자신으로 보는 풀이가 많고, 사람이 되시기 전의 성자 하나님, 곧 그리스도로 보는 이들도 있다. 그분이 도망친 이방 여종을 먼저 찾아가셨다.

나를 보시는 하나님. 하갈이 그 말을 할 때 나는 얼굴이 뜨거웠다. 그분은 나를 피해 달아난 여종을 광야에서 찾아가셨다. 이름을 불러 주셨다. 나는 그녀를 "여종"이라고만 불렀는데.

하갈은 아들을 낳았다. 남편이 그 아이 이름을 이스마엘이라고 지었다. 하갈이 들은 그대로였다. 하나님이 들으신다. 남편은 여든여섯이었다.

남편은 아이를 안고 오래 들여다보았다. 저 아이가 별처럼 많을 자손의 시작일까. 나는 그 곁에 서서, 내가 낳지 않은 아들의 울음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열세 해가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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